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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사유의 방’에서 치유를 경험했다
김우영 언론인
2021-11-29 15:53:47최종 업데이트 : 2021-11-30 13:02:39 작성자 :   e수원뉴스 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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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2층 상설전시관 '사유의 방'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길고 어두웠다. 그곳에 영상이 흐른다. 장줄리앙 푸스의 '영원히 실재하는 것은 없다'는 영상인데 불교의 공(空) 개념을 담았다고 한다. 느릿느릿 펼쳐지는 화면에는 얼음과 물, 수증기 등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맞다. 얼음과 물, 수증기처럼 영원히 실재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저 모퉁이를 돌면 그들을 만날 수 있다는 조급한 마음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모퉁이를 돌았다.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졌다. 사방이 붉은 빛이 도는 황토로 칠해진 넓은 방 그 끝쯤에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모자를 벗어들고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약 1400년 전 이 걸작을 만든 장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인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들이 신비로운 미소를 띤 채 내 앞에 앉아있다.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두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사진=김우영)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두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사진=김우영)

 

 

 

관람객들이 여럿 있지만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윽한 조명 아래에서 반가사유상을 마주하고 오랫동안 바라본다. 서로 말을 아끼고 반가사유상에 집중한다. 침묵 속에서 반가사유상을 바라보다 천천히 움직이며 반가사유상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도 한다. 신기하다. 이 공간에서 그들은 말을 잊어버린 것 같다."

 

이현주 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이 한 신문에 쓴 글 그대로다.

 

나도 그랬다. 숨 쉬는 것을 잊은 채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온전히 집중했다. 때로는 주저앉아서 올려다보느라 시간이 흐른 것도 몰랐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허기조차 잊었다.

 

최근 이렇게 나를 잊고 집중해 본 일이 없었다. 생각조차 잊었다. 전시장을 나서면서 나도 그 미소를 짓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방에서 치유를 경험했다. 반가사유상을 전시하고 있어서 '사유의 방'이라고 이름 붙인 것 같은데 '치유의 방'이란 이름을 더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이 전시회는 지난 12일부터 시작됐다. 상설전시라서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으니 시간될 때 반드시 보시길 바란다.

 

불교신자가 아니면 어떠랴. 내 경우 믿는 종교는 없지만 절에 가면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다. 절집의 기운이 좋은 것 같으면 3배를 하고 대웅전에 가만히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가 나오기도 한다. 성당에 가면 성호를 긋고 고개를 숙인다. 몇 년 전 이슬람 국가인 우즈베키스탄과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는 사원에 가서 한참동안 앉아 있기도 했다. 새벽녘이면 들려오는 아잔(이슬람에서 예배의 시각을 알리는 육성) 소리에 잠이 깨기도 했지만 나중엔 먼저 깨어 그 소리를 기다리기도 했다.

 

이런 사람을 '두루 만신(萬神)교' 신자라고 한다지.

 

아무튼 삼국시대 불교조각을 대표하는 걸작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드문 일이라고 한다. 박물관 측은 전시실을 조성하면서 두 국보의 예술성과 조형미를 온전히 표출하고 관람객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조명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특히 좋았던 것은 유리 진열장이 없어 사방에서 불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사진=김우영)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사진=김우영)

 

 

한 점은 높이 83.2㎝. 동(銅)으로 주조하여 도금한 상으로 삼국시대 불교조각을 대표하는 걸작품이다.

 

머리에는 높고 장식적인 보관을 쓰고 있는데 네모형에 가까운 둥근 얼굴에 눈을 반쯤 내려 감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사색에 잠긴 모습에서 자비의 보살형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표정도 나타난다. 자비롭고 신비한 미소였다가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도 보인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사진=김우영)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사진=김우영)

 

 

다른 한 점은 높이 93.5㎝로 7세기 전반에 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일본 국보로써 교토에 있는 고류지(廣隆寺)의 목조반가사유상과 유사한데 신라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십몇 년 전 (사)화성연구회의 일본 성곽비교답사 길에 교토 고류지에서 목조반가사유상을 본 적이 있다. 그 반가사유상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서양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고류사의 미륵상에는 참으로 완성된 인간 실존의 최고의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되어 있다" "인간존재의 가장 청정하고 원만한 그리고 가장 영원한 모습의 심벌"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최종태 서울대명예교수(조각가)는 "이 말은 우리 금동반가상에 더 어울리는 말같이 보인다. 나는 이 금동미륵반가상이 그 옛날 백제 땅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한 바 있다. 만면에 머금은 백제특유의 미소, 옷 주름이 부여에서 출토된 와당들의 볼륨 그 만듦새와 같다는 점, 형태 전체가 갖는 부드러운 정감 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민병찬 관장은 "반가사유상은 생로병사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을 상징하는 한편, 깨달음의 경지를 향해 나아간다는 역동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다"고 밝힌다.

 

코로나19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이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서 위안을 받기를 바란다. 나도 다시 한 번 조용히 다녀올 참이다.

 

 

*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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