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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 눈치의 발굴과 확장
정수자 시조시인
2021-12-08 14:18:21최종 업데이트 : 2021-12-07 14:16:21 작성자 :   e수원뉴스

인문칼럼

 

요즘 새롭게 눈에 띄는 눈치가 있다. 말뜻이 더 새로워졌다고 할까, 넓어졌다고 할까. 별로 유쾌한 표현이 아니었던 데 비하면 눈치의 말품까지 달라진 듯하다. 말이란 쓰기에 따라 생멸과 변색 그리고 확장을 거듭하게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순우리말 '눈치'가 'nunchi'로 옥스퍼드사전에 오른 것은 신기한 일이다. 눈치 빠른 어느 언어 감각이 잡아채고 친절하게 밝혀본 게다. 그런데 눈치는 한류 분위기를 타고 최근에 꽤 늘어난 한국어의 옥스퍼드사전 등재(46개)와도 다른 느낌을 준다. 우리 일상에서는 '눈치 본다'는 표현이 기분 좋게 여겨지지 않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한국어를 외국에서는 어떻게 읽고 풀었는지 궁금하다.

 

먼저 주목된 것은 눈치를 센스로 읽었다는 점이다. 특히 '인생, 일, 사랑의 성공 열쇠가 되는 직감적 반응(gut reaction)'으로 해석한 데서 새로운 면모를 본다. 나아가 눈치란 '한국인들의 초능력(superpower)' 같아서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순간적으로 간파하는 미묘한 기술'이라는 해석은 색다른 확장의 재미를 안긴다. 우리네 언어 사용법과 다른 느낌에 더러는 갸웃거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나라 밖에서 우리말의 뜻은 물론 노릇까지 새삼 넓혀놓은 것이다.

 

그래서 다시 보면, 눈치에는 그런 면면이 담겨 있다. 사전에서도 눈치를 '일의 정황이나 남의 마음 따위를 상황으로부터 미루어 알아내는 힘'으로 풀고 있다. 눈치라는 것도 잘만 활용하면 '성공의 열쇠'로 삼을 수 있다는 증좌가 아닌가. 그런데 눈치의 문화어로 '눈기'를 적고 있으니 부정적 사용을 염두에 둔 순화어로 보인다. '눈칫밥', '눈치보다', '눈치 없다'에서 짐작하듯, 눈치에 담아온 편편치 않은 심기를 의식한 것이겠다.

 

그런데 눈치도 조금 넓혀서 보면 다른 면을 지닌다. 예컨대 요즘은 세상의 눈치를 두루 봐야 한다면 어떠한지. 날로 힘들어지는 노약자며 생존고통에 처한 청년들 눈치 살피기부터 필요하니 말이다. 빈부격차 줄여가며 더불어 살길 찾기가 무엇보다 화급한 판이다. 게다가 기후위기도 지구 환경의 눈치를 더 보라는 채근이겠다. 서두른 대책 앞에서도 시늉만 하며 대부분 나라가 자국 산업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지만. 그런 점에서 세상의 눈치 보기란 상황에 대한 반응과 행동의 촉구로 봐도 되겠다.

 

둘러보면 우리는 많은 눈치를 살피며 살고 있다. 좋은 의미에서는 상대의 마음이나 기분을 살피고 그 상태를 배려하는 자세다. 흔히 분위기 파악이 빠르니 늦으니 하는 말에서도 드러나듯, 일상 속의 눈치가 많이 작동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젓갈을 얻어먹는다.'는 속담도 눈치가 삶의 한 기술임을 보여준다. 눈치를 줘도 둔해서 눈치 채지 못하면 사는 게 팍팍할 것이라는 암시가 담겨 있는 것이다.

 

눈치는 글에도 필요하다. 무릇 삶이나 사물의 이면을 미루어 알아내는 힘이 중요한 까닭이다. 무엇이든 잘 듣고 잘 보고 잘 잡아채려면 남다른 눈치를 갖춰야 한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윤동주, 「서시」)는 문장은 얼마나 먼 별들의 눈치를 섬세하게 챈 것인가. 먼저 쏘아올린 좋은 시들의 눈치를 보며 둔해지는 감각을 벼려본다.


*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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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 눈치, 센스, 정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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