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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수원의 사투리에 관하여
언론인 김우영
2020-07-27 12:12:19최종 업데이트 : 2020-07-27 12:13:09 작성자 :   e수원뉴스

수원의 사투리에 관하여

수원의 사투리에 관하여
 

수원·화성·오산·신갈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대표적인 시장 '남문시장'

수원·화성·오산·신갈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대표적인 시장 '남문시장'

 

벌써 23년이 넘었다. 1997년 3월 수원시립교향악단의 미주 순회연주를 취재하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에 다녀왔다.

 

수원시향은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오르페움과 미국 산호세의 플린트센터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캐나다 공연을 마치고 미국 산호세로 가기 전 이틀 동안 LA에서 묵었다.

 

나는 외국에 나갈 때 고추장이나 김이니, 장아찌니 하는 한국 음식을 갖고 가지 않는다. 그 나라에 가면 현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나름의 고집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을 떠난 지 닷새쯤 되니 슬슬 김치찌개가 생각났다.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시아에서는 한국음식이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는 고기와 빵 종류가 주로 나와서 좀 질렸다. 물론 스테이크 종류는 양도 푸짐한데다 육질과 요리방법 모두 훌륭했지만, 고기를 크게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고역일 수밖에.

 

햄버거마저도 혼자 먹기 힘들 정도로 컸다. 게다가 감자튀김도 엄청 양이 많았고 콜라나 커피는 막걸리로 따지면 거의 한 되쯤 내왔다. 그러니 미국인들의 지병이 비만일 수밖에.

 

그런 상태에서 한인들이 모여 사는 LA 한인타운 내 한국음식점에 갔다. 개고기집과 연탄집게만 빼고는 모두 있다는 곳이다. 음식도 한국 못지않게 맛있었다. 며칠 굶은 사람들 마냥 식탐을 부렸다. 비싼 소주도 몇 병 내와 왁자하게 떠들며 저녁을 마쳤다.

 

옆 테이블에는 한국 여행자들이 있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오랜만에 모국 음식을 접한 것 같았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들 중 나이가 좀 든 한사람이 내게 "낼은 어디로 가실 거?"라고 묻는다.

 

응? 종결어미를 깔끔하게 잘라먹는 이 말투는?

 

"숸(수원)서 오셨어요?"라고 물으니 깜짝 놀란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점쟁이 본 듯이 묻는다. 어떻게 알긴, 수원사투리를 쓰셨기 때문이지. "숸 밑창(아래)사람"이란다. 수원 밑창이라면 병점이나 오산이시냐고 하니 병점에서 오셨다는 것이다. 화성시나 오산시나 해방되기 전만 해도 같은 수원군이었으니 역사적 문화적 뿌리가 같다. 장을 보러 수원 역전시장이나 남문시장으로 나왔고 혼인식도 수원에 있는 예식장에서 했다. 사투리도 같다.

 

참 반가웠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수원사람을 만나다니.

1997년 수원사람들을 만났던 LA 한인타운 내 한국음식점에서 먹은 초대형 광어

1997년 수원사람들을 만났던 LA 한인타운 내 한국음식점에서 먹은 초대형 광어

 

수원사투리의 묘한 매력을 느낀 것은 그때부터다. 그전까지는 그게 수원지방 사투리인줄 모를 정도로 무심했다. 언론인이라는, 시인이라는 작자가.

 

외지인들이 가장 잘 아는 수원사투리는 '~하는 거/~할 거'식의 종결어미다. '점심 뭐 먹을 거야?'는 '즘심 뭐 먹을 거?' 다른 지역 사람들이 들으면 말을 하다 만 것 같을 것이다.

 

2006년 개봉해 1천만 관객을 돌파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도 수원사투리가 나온다. 수원시청 양궁선수 역을 맡은 배두나가 수원사투리를 써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배우 송강호가 현서가 살아있다고 하는데도 경찰이 이를 무시하자 수원시청 양궁팀 추리닝을 입은 배두나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우리말을 못 믿겠다는 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감독상, 최우수 작품상,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 등 4관왕을 차지한 '봉테일(봉준호+디테일)' 봉준호답다.

 

'~하걸랑', '~하거덩(하거든)' 등의 어미도 수원 사투리다. '닌' '니는(너는)'도 그렇고 '저 밑창(저 아래)' '구뎅이(구덩이)' '구데기(구더기)' '살뎅이(살덩어리)' '이쪽으로 가믄(가면)'도 수원지방의 사투리다.

 

그러고 보니 '사뎅이(돼지 등뼈)'도 있다. 얼마 전 본 칼럼에도 쓴 바 있지만 뼈다귀탕, 감자탕이라고 불리는 이 음식을 수원에서는 '사뎅이탕' '사뎅이국'이라고 했다. 현재 이춘택 병원 뒤편으로는 사뎅이 골목도 있었다.

 

혹시 '사뎅이'는 돼지 등뼈에 붙어 있는 '살덩어리'가 아닐까? '살덩어리'가 수원사투리인 '살뎅이'→'사뎅이'로 변화한 것일 수도 있다.

 

지명발음도 수원사람들은 독특하다. 지금도 중·장·노년층은 팔달산을 '팔딱산'으로, 남양읍을 '내명읍'으로, 정남면을 '증남면'으로 광교산을 '괭교산'으로 부른다. 영등포가 아니라 '이응등포'라고 발음했다. 우리 외삼촌 이름이 '영재'인데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 사람들은 '이응재'라고 불렀다.

 

'날씨가 푹하다(풀렸다, 따듯하다)'다는 말도 다른 지방에서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조금만 세월이 더 흐르면 수원사투리는 아예 잊혀 질 것이다. 그러기 전에 지역에서 수집·보존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라도 늦지는 않았다.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공감칼럼, 김우영, 수원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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