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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숙지산 부석소(浮石所), 적극적인 관리·홍보 필요하다
김우영 언론인
2022-10-24 13:57:13최종 업데이트 : 2022-10-24 13:57:07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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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팔달산을 거쳐 숙지산에 갔다. (사)화성연구회(이사장 최호운) 비지정·근대문화유산 모니터링을 위한 위원회(위원장 김용헌 이사) 활동 때문이었다.


숙지산 부석소를 답사하며 모니터링을 하는 (사)화성연구회 회원들 (사진/김우영)

숙지산 부석소를 답사하며 모니터링을 하는 (사)화성연구회 회원들 (사진/김우영)

 

화성연구회는 올 한해 50곳이나 되는 수원시내 비지정문화재나 근대문화유산을 답사, 관리상태를 확인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모니터링 자료와 사진은 지난 9월16일과 17일 화성행궁에서 열린 '2022 문화재지킴이 전국대회'에서 전시돼 호평을 받았다.

 

모니터링 사진전을 열기까지 김용헌 위원장을 비롯, 이용창·김우영·김해자·최선옥 이사와 김준기 회원, 강희수 사무총장 등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특히 김용헌 위원장은 현장 답사를 기반으로 모든 사진에 일일이 설명문을 붙였고, 김준기 회원은 몇 날밤 늦게까지 꼼꼼하게 사진을 편집했다. 강희수 총장은 사진을 붙일 베니어판을 준비하느라 남편까지 동원했다.

 

화성연구회 회원들의 끈끈한 인간관계와 저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김용헌 위원장은 곤충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고 농촌진흥청에 근무했던 농학자다. 현재는 화성연구회 이사에, 유교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수원사랑에 앞장서고 있다. 수원향교 장의 소임도 맡고 있어 화성연구회의 성신사 고유제 때마다 집례를 도맡는다.

 

 

 

이번 모니터링은 팔달산 성신사와 정조대왕 동상, 도지사 공관을 거쳐 숙지산 부석소(浮石所)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부석소(浮石所)란 '돌을 뜬 곳'이다. 경북 부석사와 충남 부석사 모두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전설이 있다. 부석이라... 돌을 공중에 띄웠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 옛날 돌을 뜬(캐낸) 채석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김위원장은 모니터링을 앞두고 사전답사를 꼼꼼하게 한 모양이다. 길 안내에 막힘이 없다.

 

나는 산 북쪽 옛 연초제조창 부지에 건립된 화서역 파크푸르지오 길 건너에서 오르곤 하는데 김위원장은 남쪽 아파트단지를 통해 능숙하게 길을 잡는다.

 

 

 숙지산 부석소 안내도

숙지산 부석소 안내도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를 보면 화성을 건설하는데 모두 87만 3517냥7전9푼의 공사비용이 들었다. 이 중 석재가격은 13만6960냥9전(20만1403덩어리)다.

 

수원엔 부석소가 여러 곳 있었는데 각 부석소에서 캐낸 돌은 숙지산 8만1100덩어리, 여기산 6만2400덩어리, 권동 3만2천 덩어리, 팔달산 1만3900덩어리 등 18만9400덩어리로 화성을 축성하면서 가장 많은 돌을 뜬 곳이 숙지산이다.

 

이처럼 중요한 곳이기에 숙지산 부석소가 수원시 향토유적 제15호로 지정됐다.

 

 

 

숙지산이 있는 곳의 옛 지명은 '공석면(空石面)'이다. 비어있다는 뜻을 가진 '공'자, 돌 '석'자. 돌이 비워진다는 뜻이다.

 

1796년 1월24일 수원에서 환궁하는 길에 정조대왕은 이곳에 돌이 많이 발견됐다는 채제공의 보고를 받았다. 이에 정조대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화성성역의궤'(부편2-연설편)는 기록하고 있다.

 

"하늘로부터 도움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면(面) 이름을 공석(空石)이라 하고 산의 칭호를 숙지(孰知)라 했으니, 예로부터 돌이 없는 땅이라고 여겨 왔는데 오늘날 홀연히 셀 수 없이 돌이 나와 축성의 재료가 되게 했다. (그리하여)돌이 없어지게 될 것을 누가 미리 알고 그런 이름을 붙였던가. 이는 아득한 예전에 미리 정해 놓은 바가 있었음이니 그 얼마나 기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숙지산은 현재 '孰'자와 '知'를 쓴다. 예전엔 '熟(익힐 숙)'자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익히 알았다'는 뜻이다. 선조들이 돌이 비워지게(空石) 될지 익히 알았다(熟知)는 것이다.

 

 

 

첫 번째 만난 부석소는 배수지 앞에 있는 ⓵번이다. 이어 산을 한바퀴 돌며 ⓶⓷⓹까지 살펴봤다. ⓸번 부석소는 날이 어두워오고 있어 찾지 못했다.

 

나는 지금까지 서너 번 숙지산 부석소를 답사했다. 그런데도 갈 때마다 위치가 헛갈린다. 여기쯤인가, 이 길이 맞는가 한참씩 고민한다.

 

현장은 물론 산길 곳곳에 안내 표시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가시넝쿨과 잡목이 우거져 접근하기 힘든 부석소(사진/김우영)

가시넝쿨과 잡목이 우거져 접근하기 힘든 부석소(사진/김우영)


나무사이로 겨우 보이는 쐐기흔적(사진/김우영)나무사이로 겨우 보이는 쐐기흔적(사진/김우영)

 

 

또 다른 아쉬움은 잡목과 가시넝쿨이 우거져 현장 접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⓷번 부석소의 경우 규모가 큰데다가 돌을 떼어낸 흔적인 쐐기자국이 잘 남아 있는 곳이지만 정비가 안 된 상태여서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⓶번 부석소 역시 바위 아래로 내려가 다가서기 꺼려질 만큼 방치돼 있다.

 

 

 

부탁한다. 안내판을 곳곳에 설치해주기를. 또 정기적으로 잡목을 제거하고 쐐기 흔적위에 쌓인 낙엽도 제거해주기를. 시의 인력이 충분치 않다면 약간의 관리 예산을 들여 화성연구회 같은 단체에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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