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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천덕꾸러기 된 은행나무, 한때 시목이었는데...
언론인 김우영
2019-10-22 09:42:03최종 업데이트 : 2019-10-22 09:56:09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천덕꾸러기 된 은행나무, 한때 시목이었는데...

[공감칼럼] 천덕꾸러기 된 은행나무, 한때 시목이었는데...

가을이다. 고등학생 시절 ㄱ대학 전국백일장에 나갔을 때 작은 인공 호수가 보이는 은행나무 아래 앉아 시를 썼다. 결과는 2등에 해당하는 우수상이었다.

그때 받아 본 대학신문에는 그 대학문학상 당선작이 실렸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작품은 시가 아니고 수필 당선작이었다. 글 제목은 '친구여, 가을이 가고 있나보다'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늦가을이 되면 이 수필 제목과 그 은행나무 아래 수북하게 쌓여있던 은행잎이 생각난다. 

길가에 늘어선 은행나무는 단풍나무와 함께 가을의 정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맑은 날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도 보기 좋지만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길 위에 쌓인 낙엽을 밟으면 걷는 느낌도 좋다.
은행나무 낙과 수집. 사진/수원시포토뱅크 강제원

은행나무. 사진/수원시포토뱅크 김기수

은행나무는 1970년대부터 1999년까지 수원시의 시목(市木)이었다. 그런데 식견 있는 시민 사이에는 은행나무가 시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관선시대에 만들어진 상징물로써 특징 없고 획일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가 은행나무나 느티나무, 철쭉 또는 개나리, 까치, 비둘기 등을 도시 상징물로 지정하고 있다. 물론 수원시도 마찬가지였다. 전기한 것처럼 예전 수원시의 시목(市木)은 은행나무, 시화(市花)는 철쭉, 시조(市鳥)는 비둘기였다. 수원시의 역사나 자연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은 상징물들이었던 것이다.

이에 수원시는 2000년 1월 1일 0시 '새천년 수원시 미래 비전'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상징물을 발표키로 하고 재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수원시 상징물은 수원시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수원 시민 여론조사와 설문조사, 그리고 역사·문화 및 생물종 관련 전문가들과의 여러 차례 자문회의를 거쳐 대표 상징물로는 '화성', 상징종으로는 '소나무', '진달래', '백로', '반딧불이' 그리고 보완적 상징종으로 '수원청개구리' 등을 선정했다.

최종 선정을 하는 자리에는 나를 비롯해 당시 염태영 수원환경운동센터 대표 등 문화 및 역사계 인사 등 전문가들이 참석해 열띤 논의를 펼쳤다.

다음은 내가 당시를 회상하며 써서 발표한 글 중의 일부이다. 『시목 선정과정에서 소나무와 마지막까지 경합하던 나무는 기존의 시목인 은행나무, 버드나무, 귀룽나무 등이었다. 이 과정에서 먼저 소나무와 은행나무, 버드나무 등이 팽팽히 맞섰다. 결국 정조임금께서 내탕금을 내려 조성한 노송지대와 융건릉의 소나무 등 역사적인 의미가 큰 소나무로 결정됐다. 일부 인사가 소나무는 공해에 약해 도시에 심기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소나무가 시목으로 선정돼야 한다는 필자의 의견이 설득력을 얻어 소나무로 결정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나무는 시목의 지위를 잃었다. 그렇다고 시내 가로수가 모두 소나무로 교체된 것은 아니다. 은행나무는 가을 도시경관을 아름답게 하고(예나 지금이나 환경미화원들에겐 골칫거리였다!), 이산화탄소 등 대기오염물질 흡수율이 높아 도심의 가로수로 적합하다는 연구결과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로수 은행나무들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은행나무. 사진/수원시포토뱅크 김기수

은행나무 낙과 수집. 사진/수원시포토뱅크 강제원

하지만 상당수의 은행나무가 다른 나무로 교체될 운명에 처했다. 은행열매 악취 때문이다. 수원시에 따르면 시 전체 가로수 7만5500그루 가운데 은행나무는 1만2167그루다. 그중 열매를 맺는 암나무는 33%인 4313그루라고 한다.

시는 수원시 공원녹지사업소는 주요 대로변, 상가 밀집지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대상으로 '은행 암나무 수종(樹種) 교체 사업'을 실시한다.

시 관계자는 "매년 가을 빈발하는 은행열매 관련 민원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쾌적한 보행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사실 지난번 태풍에 은행열매가 많이 떨어져 도심 곳곳에서 악취가 발생했다. 예전 같으면 주변 주민들이 경쟁적으로 주워가 악취가 발생할 틈이 없었지만 이젠 중금속 오염을 우려해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 그러니 차바퀴와 사람 발에 밟혀 냄새를 풍기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만 것이다.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할 때 행정이 이를 해결해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노란 은행나무가 도로변을 장식하는 가을풍경이 사라진다면 좀 섭섭할 것 같다.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공감칼럼, 김우영,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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