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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명예의 전당 “대대손손 기억하라”
김우영/시인, 언론인
2018-08-16 13:10:44최종 업데이트 : 2018-08-16 13:07:23 작성자 : 편집주간   강성기

수원시에도 '명예의 전당'이 생겼다. 14일 시청 본관 로비 벽면에 '수원을 빛낸 인물' 8인의 사진과 약력이 내걸렸다. 보고 또 봐도 한 분 한 분 모두가 자랑스러운 분들이다. 독립운동가도 있고 기업인이 있는가 하면 서지학자와 평화활동가도 있다.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분들은 독립운동가 김세환·이선경·임면수·김향화 선생, 서지학자 이종학 선생, 기업가 최종건·최종현 회장, 평화활동가 안점순 할머니 등이다. 이 분들은 염태영 시장의 말처럼 수원을 빛내고 국가 발전과 독립, 국가의 자존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분들이다.

​수원시는 지난해 7월 '수원시 명예의 전당 설치 및 운영 조례'를 제정한 데 이어 헌정 대상 후보자 공모신청을 받고 지난 3월 1차 공적 심의와 4월 5일 2차 심의를 거쳐 최종 헌정 대상자를 선정했다. 이 분들이 독립운동가 김세환·이선경·임면수·김향화 선생, 서지학자 이종학 선생, 기업가 최종건·최종현 회장, 평화활동가 안점순 할머니다. 이 분들의 삶과 활동은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수원시민으로서의 자부심도 높여준다.
 

​이날 헌액식에는 귀한 사람들이 참석해 더욱 의의가 깊었다. 임면수 선생의 손자 임병무 씨, 최종건 전 SK 회장의 아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이종학 선생의 부인 윤정의 여사와 딸 이선영 씨, 김향화 선생의 후손 김중수 씨, 안점순 할머니의 조카 이종례 씨 등 후손들이 함께 한 것이다.
왼쪽부터 김중수(김향화 선생의 후손), 이선영(이종학 선생의 딸), 윤정의 (이종학 선생의 부인), 이종례(안점순 할머니의 조카), 임병무(임면수 선생의 손자), 염태영 수원시장, 조명자 수원시 시의장, 최신원(최종건 회장의 아들) 씨가 도의원과 함께 명예의 전당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중수(김향화 선생의 후손), 이선영(이종학 선생의 딸), 윤정의 (이종학 선생의 부인), 이종례(안점순 할머니의 조카), 임병무(임면수 선생의 손자), 염태영 수원시장, 조명자 수원시 시의장, 최신원(최종건 회장의 아들) 씨가 도의원과 함께 명예의 전당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3·1운동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인 김세환(1888~1945) 선생은 미국인 선교사 밀리의 후원을 받아, 수원의 삼일남녀학교(三一男女學校)를 설립하여 후진교육에 전념했다. 3월 1일 민족대표들이 일본경찰에 붙잡히고, 김세환도 중앙지도체 49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3월 13일 검거, 다음해 10월 석방됐다. 출감한 뒤에도 교육사업을 통하여 재산가인 홍사훈(洪思勳)을 설득, 수원상업학교를 설립하여 2세교육을 통한 계속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선경(1902~1921) 선생은 '수원의 유관순'이라 불리는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8개월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석방된 지 9일 만에 순국했다.
 

​임면수(1874~1930) 선생은 수원지역을 대표하는 근대교육가이자 독립운동가로 삼일학교를 설립했다.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분교인 양성중학교 교장을 역임하는 등 만주 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21년 2월 지린영사관의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평양감옥으로 압송, 옥고를 치렀다. 수감 중 혹독한 고문을 당해 반신불수가 되었으며 석방 후에도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1930년 11월에 병사했다.

​김향화(1897~?) 선생은 수원기생들은 1919년 1월 고종임금이 돌아가셨을 때도 이를 슬퍼하며 덕수궁 대한문 앞에 가서 소복을 입고 나라 잃은 설움을 토했으며, 3월 29일에는 수원기생 30여명이 자혜의원과 수원경찰서 앞(현 화성행궁)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로 인해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렀다.
 

서지학자 이종학(1927~2002)선생은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고 특히 수원화성, 이순신 장군 독도와 관련된 수많은 자료를 수집해 수원시와 독도박물관에 기증했다. 특히 남과 북이 일본의 독도 야욕에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북한에 가서 독도 관련 전시회를 하기도 했다.
 

SK그룹 창업주인 최종건(1926~1973) 전 회장과 그의 동생 최종현(1929~1998) 전 회장은 수원의 대표적인 기업인이다. 최종건 전 회장은 1953년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수원 평동에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을 설립했고, SK그룹은 1962년 2대 최종현 회장이 선경직물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가파르게 성장했다.

​지난 3월 30일 별세한 안점순(1928~2018) 할머니는 14살 되던 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3년여 동안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1990년께 수원으로 이사 왔고, 1993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이후 수요집회, 아시아연대회의 등에 참여해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며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분들 말고도 앞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인물들이 적지 않다. ​심재덕 전 수원시장의 얼굴과 공적사항을 머지않아 여기에서 보게 되길 바란다. 그가 수원에 남긴 업적은 실로 지대하다. ​수원천과 서호를 살리고, 팔달산 터널 공사를 막아냈다. 화성행궁을 복원하고, 화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정조대왕 능행차를 제대로 재현하는 등 수원화성문화제를 본격적인 관광문화축제로 육성했다. 2002년 월드컵 경기를 수원으로 유치하고, 월드컵경기장을 건립했다. 또 시내 곳곳에 세계 최고 수준의 공중화장실을 만들고 자신의 집을 허물고 변기모양으로 건축했으며 사후엔 수원시에 기증함으로써 수원을 세계화장실문화운동의 메카로 정착시켰다.
 

​또 곡반정동 출신의 시인 박팔양 선생도 있고, 성 안에서 태어 난 '오빠생각'의 최순애 선생과 나혜석 선생도 있다. 이분들 말고도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즉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렸던 임면수 선생의 부인 같은 분도 적지 않다. 차후라도 헌액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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