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사시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가 3월 30일 영면에 들었다. 한 많았던 90년 인생이었다. 일제 강점기 이 땅에 여성으로 잘 못 태어나 그 끔찍한 질곡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혹시 다시 태어나시거든 생전의 염원대로 좋은 나라에서 '여자답게' 사시길 바란다.
"억만금을 준다고 한들 내 청춘이 돌아올 수 있겠어?" 이 한 맺힌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수원시가 지난달 8일 공개한 헌정 영상 '안점순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또 "피해자들 곁에 와서 말 한마디라도 하는 게 원칙 아니냐"면서 "이제라도 사죄 한마디 하면 다 끝날 일"이라면서 일본정부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결국 직접 사과를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기금으로 '정신대 아픔 나누기' 작품을 만들었다. 김성열 연출로 극단 성 단원들의 연극과, 정수자 시인이 쓴 '도라지'라는 시가 노래로 만들어져 공연됐다. 작고하신 김동휘 선생이 이 행사 위원장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성금 전액을 수원시에 기탁했고 수원시는 고 심재덕 시장이 안점순 할머니를 초청해 직접 전달했다. 이때 안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이다. 통한의 세월을 지내 온 안 할머니의 몸 상태는 이때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2014년 5월3일 수원시청앞 올림픽 공원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안점순할머니를 위로하는 염태영 수원시장(수원시 포토뱅크) 그리고 2014년 5월 3일 수원시청앞 올림픽 공원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안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17년만이었다. 그때보다 표정은 많이 밝았지만 몸은 더 쇠약해져 있어 안타까웠다. 그후 여러 행사장에서 몇 번을 더 뵈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수원시가 제작한 영상을 통해서였다.('안점순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 영상은 수원 iTV 홈페이지(http://tv.suwon.go.kr), 네이버 TV, 수원시 유튜브 채널, 수원시 공식 SNS 등에서 볼 수 있다) 수원시 임화선 팀장과 손을 잡고 삶의 소회를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면서 '아, 이제 얼마 사시지 못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30일 오전 부고를 접하게 것이다. 임화선 팀장에게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려고 사무실로 전화를 했는데 계속 울음을 그치지 않아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직원이 말했다. 그리고 해방 후 1년 뒤에야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어귀에서 어머니를 만났다고 한다. 4개월여를 앓다가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으로 회복돼 새 삶을 살게 됐다. 그러나 그 끔찍한 기억 때문에 혼인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1990년경 조카와 함께 수원으로 이사 왔다. 안 할머니의 기구했던 삶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1993년 8월 조카딸이 피해 사실을 신고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구순잔치 때 활짝웃으며 하트를 보내는 안점순 활머니(수원시 포토뱅크) 최근 안 할머니가 활짝 웃었던 일이 있다. 지난해 12월 13일 수원 웨딩팰리스에서 수원평화나비 주최로 열린 구순 잔치에서였다. 잔치 내내 지었던 그 행복한 미소를 다음 세상에서는 평생 지으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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