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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칼럼] 도끼눈을 아십니까?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창형 교수
2021-08-04 13:55:55최종 업데이트 : 2021-08-04 13:55:09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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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도끼눈은 '분하거나 미워서 매섭게 쏘아 노려보는 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도끼날처럼 생겨서 그런 것인지, 독기가 서린 눈이라서 그런 것인지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치매가 진행되면서 누군가를 미워할 때 도끼눈을 뜨고 화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매일 같이 독기 서린 도끼눈으로 욕을 하면서 화를 낸다면 설령 가족이라고 해도 견디기 힘든 경우가 많다.

 

대학교육을 받았고, 전문직에 종사했던 사람들도 치매가 진행하면서 도둑망상, 질투망상, 피해망상이 생기면 가족을 도둑으로 의심하거나, 배우자를 부정한 사람으로 의심하거나, 누군가 자신을 해칠 거라고 믿는 일이 생긴다. 그저, 가볍게 의심하는 수준이 아니라 확신에 원망까지 더해지면 언어폭력 수준을 넘어 급기야 신체폭력까지 행사하게 된다.

 

며느리가 반지를 훔쳐갔다고 의심하는 치매 시어머니가 있다. 당연히 며느리는 범인이 아니기 때문에 안 훔쳐갔다고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어머니에게 대든다고 "x년, x같은 년"이라는 쌍욕을 가족들 앞에서 마구 퍼붓는다.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려서 헛소리를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면 기분 정도만 나쁘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볼 때 마다 도끼눈을 하며 머리채를 잡으려고 하고, 목을 조르거나 얼굴을 할퀴려고 하면 한 집에서 함께 살기 어렵다.

 

옆집에 사는 젊은 남자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물건을 어질러 놔서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할머니가 있다. 분명히 신발이 가로로 놓였는데 나중에 보니까 세로로 놓여 있다든지, 분명히 수건을 탁자위에 두었는데 나중에 보니 의자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옆집 젊은 남자를 만나면 싱글싱글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데 자신을 무시하고 얕잡아 봐서 골탕을 먹이려고 이런 짓을 벌린다고 믿는다. 언젠가 제대로 복수해 줄 거라고 다짐을 하다가 결국 옆집 창문에 돌을 던진다.

 

90세가 할아버지가 아랫집 젊은 새댁과 바람이 났다고 믿는 치매 할머니가 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인데도 자꾸 할아버지를 구박하고, 아침마다 아랫집에 내려가 초인종을 누르면서 따진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여쭤보니 "이 영감이 밤마다 일어나서 사라지는데, 어디를 갔다 왔는지 돌아올 때면 다리가 후들거려~. 분명 아랫집 새댁이 예쁘장한 것이 꼬리를 쳤겠지"라고 대답을 한다. 전립선이 때문에 몇 번씩 밤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워낙 고령이라서 걸음걸이가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생긴 오해이고 망상이다.

 

치매 환자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할 것이다. 억울해서 미치고 펄쩍 뛸 일이다. 평생 소중하게 간직해왔던 반지를 잃어버렸으니.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 허락도 없이 물건을 만졌으니. 남편이 손녀 나이 젊은 새댁과 바람을 피우니. 소중한 반지를 잃어버리면 치매 환자는 자신의 건망증을 탓하기보다 만만한 사람이 훔쳐갔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게 훨씬 속이 편한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니라 남의 잘못이 되는 셈이니까. 마찬가지로 건망증 때문에 집안 내 물건 위치가 변한 것을 기억하지 못할 때도 남의 탓을 하면 속이 편해진다. 나는 멀쩡하고 내 기억력은 정상인데 남이 내 집에 들어와서 물건을 어지럽혀 놓는 거니까. 내 탓이 아니니까, 남의 탓이니까. 남의 탓을 하는 것은 일종의 생존본능이고 자기보호반응이다.

 

인지력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착각을 하게 된다. 단순히 오해를 하면 본인만 속상하지만, 오해 수준이 망상 수준으로 변하면 주변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하루 종일 치매 환자의 망상 때문에 바짝 바짝 시달리다 병이 생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치매 노인과 함께 사는 주보호자는 화병이 생긴다. 한 집에 함께 사는 주보호자가 아닌 다른 가족들은 이런 고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보호자가 외래에 와서 남몰래 하소연을 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차라리 말기 상태라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소변도 못 가리니까 연민의 정을 가지고 돌볼 수 있지만, 신체활동에 문제없고 일상적 대화도 잘하는 치매 초기단계에서 망상이 생기면 가족들이 무척 난감해 한다. 이런 경우 대화 10개 중 1개는 망상이라서 틀린 얘기지만, 10개 9개는 실제로 맞는 얘기를 하니까 더욱 헷갈린다. 예를 들면, 망상적 얘기도 하면서 "너는 시집올 때 뭘 해왔는데 이렇게 대드느냐! 너는 남편한테 아침밥이나 해줬냐! 집안 살림을 뭐 이따위로 하냐!" 며느리 입장에서는 조금 숨기고 싶은 내용까지 까발려서 얘기하니까 더욱 치매 걸린 시어머니가 미워진다. 시어머니를 정성껏 잘 모시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점차 집안 내 분란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는 자식이 여러 명인데 왜 어머니가 우리 집에서만 모시냐는 얘기가 나오고, 결국 불필요한 이혼 얘기까지 나오게 된다.

 

전국 31개 병원에 내원한 1786명의 초기 및 중기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 중에서 가족들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망상은 23%, 공격성은 32%, 지나친 예민함은 42%로 나타났다. 치매로 인한 정신행동증상은 매우 흔한 편이고, 약물로서 증상 조절이 가능한데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일반인들이 의외로 매우 많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처럼 '우리 치매 어르신이 달라졌어요'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홍창형 프로필 및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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