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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 삶의 언덕을 돌아보다
정수자 시조시인
2021-09-28 14:50:47최종 업데이트 : 2021-09-28 14:50:20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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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지나며 언덕을 그려본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지"라는 말의 뒤끝처럼. 기댈 만한 무엇의 비유로 쓰일 때 언덕은 더 쓸쓸한 여운을 남겼다. 힘 얹어주는 역할이면 다 어울리는 언덕이라는 비유 안팎에 약자의 탄식이 담기는 까닭이다.

 

지난 명절에도 언덕을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까. 특히 이산가족이거나 부모형제가 지상에 없는 사람이면 비빌 언덕 하나 없다는 허전함이 컸을 법하다. 그와 달리 명절모임조차 꺼려지는 가족이라면 어떻게든 만남을 피하려고 애썼을 듯하다. 명절 때 가족 관련 사건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오래 눌러온 묵은 감정의 폭발이 짐작된다. '명절날 형제를 잃다'(박현수)라는 시의 제목만 봐도 그런 세태를 짚을 수 있듯.

 

힘들 때는 부모형제뿐이라지만, 때로는 형제가 이웃사촌만 못한 게 현대인의 삶이다. 조금만 둘러봐도 자주 만나는 사람들 위주로 삶의 희로애락이 재편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재산이나 부모 부양 등의 문제로 편편치 않은 일이 생기면 형제간이 원수처럼 바뀌는 게 비일비재한 세상. 없는 집이 외려 의 상하지 않는다고 위로 삼듯, 재산 문제로 의절에 소송도 종종 벌어지니 말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부모며 고향 같은 근원의 언덕까지 완전히 파버릴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혈연 같은 관계의 힘도 옅어졌다. 한때는 시골과 도시가 서로의 언덕이었다. 시골 유학생이 비빌 언덕은 도시의 친척뿐이던 시절은 특히 그러했다. 기댈 데 하나 없는 입장에서 보면 도시 친척은 몹시 부러운 언덕이었다. 정성 담긴 햅쌀이나 참기름 등을 보내오는 시골 고향이 없는 도시인에게는 시골집이 탐나는 언덕이었다. 그런 서로 기대기가 줄면서 친척이라는 관계의 언덕도 사라진 느낌이다. 신세 끼치기도 싫지만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생활이며 향유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무엇보다 언덕이란 그리운 무엇의 총칭이다. 추억의 언덕을 지닌 사람이라면 언덕에 그리움부터 겹쳐볼 법하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그리워하면서 언덕에 올라 큰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노을의 시간이 있었다면 말이다. 기다림이 딱히 아니어도 언덕은 지치고 외로운 마음을 기대기 좋은 위안처였다. 속에 쌓인 혼잣말을 바람에 실어 보내며 지친 마음을 추스르기도 좋은 곳이었다. 달을 먼저 맞거나 개울 건너 휘파람을 오래 듣던 시절의 언덕이지만.

 

물리적 언덕보다 크고 깊은 것은 마음의 언덕이다. 좋아하는 무엇을 언덕에 빗대보면 많은 것을 기대기 좋은 게 언덕이다.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을 가장 많이 기대게 해준 책이 언덕일 것이다. 그리기를 좋아하면 그림이 그러할 테고, 영화를 좋아하면 영화관이 즐거움을 키워준 언덕일 것이다. 돈이 무서운 시절이니 '영끌' 같은 자금 동원력이 삶의 큰 언덕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 만나기 어려운 시절 SNS도 만남의 언덕이 되겠고, 영혼의 언덕을 찾아나서면 시나 음악 같은 예술도 아름다운 언덕이라 하겠다.

 

내 언덕은 부모형제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 언덕을 깊이 여긴다면 서로를 아끼고 돌보는 심성의 덕이 크겠다. 당신은 어떤 언덕에 기대어 '지금 여기'를 지내시는가. 함께의 언덕을 먼저 마음 내어 가꾸기도 하시는가. 삶의 다양한 언덕들이 새삼 짚이는 나날이다.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정수자 시조시인 프로필 및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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