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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칼럼] 죽음을 꿈꾸는 아이들
안병은 수원시자살예방센터장
2021-10-06 14:22:19최종 업데이트 : 2021-10-06 14:54:10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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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부터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공부도 못하고 친구 사귀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학교 가는 게 싫었어요.

 

제가 선택한 삶도 아니고 그저 강요받은 것 같아요.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 이런 삶을 거부하고 싶어요.

 

그때부터 수없이 죽음과 자살에 대해 생각했어요.

죽음은 해방이자 탈출구처럼 다가왔어요.

 

-진료실에서 만난 한 아이의 말  

 

 

나는 진료실에서 주로 마음이 아픈 십대들을 만난다. 참 많은 아이들이 마음을 아파하고 있지만 그들은 마음껏 아파하지도 못하고 문제아 또는 사회 부적응자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이다. 자살시도를 하거나 죽고 싶다는 말을 하여 병원에 오는 순간에도 아픈 마음의 치료적 목적보다는 개인적 정신병리로 인한 문제행동의 개조를 위해 끌려오거나 학교 등의 기관에서 보내지는 경우가 많다.

 

이해받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다 마음이 지치고 너무 아픈 상태에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죽음이라는 처방을 접하고 꿈꾸게 된다. 그렇게 삶을 알기도 전에, 살아보기도 전에 너무 힘들고 지쳐 죽음을 꿈꾸는 것 같다. 죽음이 무엇인지, 죽음 이후의 일들에 관하여는 큰 관심이 없다. 그저 지금 너무 힘들어서 여기를 벗어나고 싶고, 그 유일한 방법으로 죽음이 삶의 전면에 부상하는 것 같다.

 

한국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죽음은 힘든 현실의 돌파구이다. 죽음은 버겁고 힘든 삶을 끝낼 수 있는 하나의 고려할만한 방법이다. 죽음 앞에서 내가 살아온 삶과 지금의 삶, 앞으로 살아가게 될 삶은 죽음을 망설이는데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소년들에게 지금의 삶은 죽어도 상관없는 삶, 슬프게도 오늘 당장 끝내버려도 괜찮은 삶이다.

 

모두가 쉽게 죽음을 택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죽고 싶다."라는 말은 흔히 쓰는 말이 되었다. 힘든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죽고 싶다고 말한다. 충분한 고민 없이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얘기하고, 아무렇지 않게 삶을 끝내도 된다는 '말'은 곧 진짜 죽음을 가볍게 만든다. 삶과 죽음, 삶의 의미, 가치 등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막연한 생각들은 힘든 현실 앞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불러온다.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죽음에 대한 환상이 생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정체성과 직결되는데 그게 형성되기 전에 해결책으로 죽음이 먼저 다가온다. 삶은 물러나고 죽음이 전면으로 드러난다. 재미, 흥미, 의미를 잃어버린 삶에 오로지 죽음만이 남아, 현실을 벗어나 편해지기 위한 방법으로 '죽어도 상관없게' 된다.

 

아이들은 죽음을 제대로 경험하면서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왜곡된 죽음의 문화를 받아들인다. 과연 아이들은 어디에서 죽음을 배울까? 장례식장도 제사도 안 데려간다. 흔히 죽음을 배우는 곳은 사이버 공간이다. 원샷원킬 하다보면 점수가 더 많이 올라간다. 내가 키우던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여버리고 다시 만들면 된다. 다시 태어나고 더 강해지고 사이버 세계 속에서 우리는 죽음에 무감각해지고 죽음은 남의 일이 되버린다. 우리는 죽음의 당사자가 아니라 죽음의 관찰자이다. 살아있는 존재인 나를 죽은 존재와 분리하는 수준을 넘어서 타인의 죽음을 즐긴다. 죽음 자체가 완전히 왜곡되고 틀어졌다.

 

힘들고 지친 삶과 그 고통 속에서 죽음을 꿈꾸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절규는 단순히 자살사고, 자살시도, 자살이라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도 이해되지도 못할 것이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만나며 자살이라는 용어는 아이들의 힘든 삶을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수 없이 해본다. 아 이 친구들은 스스로를 죽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모든 짐을 내려놓음을 의미하는 죽음의 상태를 소망하고 꿈꾸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그러한 상태는 반드시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자해 행동이나 자살 사고로 나타나는 아이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자신의 아픔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아픔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해줄지 고민해야 한다. 무엇이든 어떤 방법이든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은 자기 내면을 표현하는 능력이 많이 무뎌져 있어서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다. 마음껏 아파할 수 있고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 옆에서, 곁에서 건강하게 함께 있어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아픔을 주체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아이들마다 표현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누구는 분노를 쏟아낼 수도, 누구는 엉엉 우는 슬픔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거부할 수도 있다. 아이들마다 다 다르다.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아픈 것을 용인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안병은 수원시자살예방센터장 프로필 및 사진

 

안병은, 수원시자살예방센터, 죽음, 자살, 자해, 소망,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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