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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 고성주 회장의 이웃사랑
김우영/시인, 언론인
2018-07-23 08:40:32최종 업데이트 : 2018-07-24 09:14:23 작성자 : 편집주간   강성기

가마솥더위라는 말이 맞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던 지난 17일, 이날은 초복이었다. 이날 낮 12시 기온은 32℃. 체감온도는 물론 이보다 더 높았을 것이다. 앞에서 가마솥더위라고 했지만 이날 실제로 펄펄 끓는 가마솥 앞에서 비 오듯 땀을 흘린 사람들이 있었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 경기안택굿보존회 사무실이자 '민간신앙·세시풍속 경기안택굿 명인' 고성주(64) 회장 집이다. 이 집에서는 고성주 회장을 비롯, 최병석(64)씨 등 신도, 보존회 회원들과 지동 통장 등 봉사자들이 초복을 맞아 지동 노인들을 위한 삼계탕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햇볕을 가리기 위해 차일을 친 앞마당도 모자라 고회장의 집 안채와 서재 등 방마다 노인들이 가득 가득 앉았다.
 

원래는 11시부터 배식을 하려고 했으나 워낙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찾아오는 바람에 10시30분부터 서둘러 손님들을 맞았다고 한다.

고성주 회장 집 마당에 모인 노인들. 이날 380명분의 삼계탕이 제공됐다. 사진/김우영

고성주 회장 집 마당에 모인 노인들. 이날 380명분의 삼계탕이 제공됐다. 사진/김우영

내가 도착한 시간은 10시 50분, 얼핏 봐도 한꺼번에 100명이 넘는 노인들이 한꺼번에 몰려 식사를 하고 있었다. 고 회장과 최병석 씨 등 봉사자들은 줄줄 흐르는 땀을 목에 건 수건으로 대충 닦으며 뜨거운 삼계탕을 나르고 빈 그릇을 치우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큰 잔치를 많이 치러본 사람들인지 손발이 척척 맞는다.

나도 뭐라도 도울까하고 가방과 모자를 벗어놓고 나왔으나 오히려 걸리적거릴 것만 같아 골목길로 나오고 말았다.

 

이날 준비한 닭은 380마리. 그러니까 무려 380명이 먹을 삼계탕을 준비했다는 말이다. 이 삼계탕을 노인들에게 주기 위해 고회장과 최병석 씨 등은 3일 전부터 육수를 준비하고 열무김치를 담갔다. 육수를 내는 과정도 정성이 가득하다.
 

황기를 삶은 물에 소 다리뼈와 다시마, 파뿌리, 북어머리 등을 넣은 후 푹 끓인다. 여기에 마늘과 양파 등을 넣으면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육수가 되는 것이다. 그 국물에 닭을 넣고 삶으면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귀한 삼계탕이 된다.

 

"아침 7시 반부터 어르신들이 오셨어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이따가 오시라고 했는데 9시 반쯤 되자 다시 많은 분들이 몰려오시는 바람에 더는 기다리시게 할 수 없어서 10시 반부터 부랴부랴 배식을 했어요. 우리 봉사자들께서 이 더위에 고생이 참 많아요"
 

가마솥 옆에서 굵은 땀을 흘리며 삼계탕을 끓이고 있는 고회장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시선은 마당으로 가있다. 노인들이 부족한 것이 더 없나 살피는 것이다.

고성주 회장이 폭염 속에서 연신 삼계탕을 끓여내면서도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김우영

고성주 회장이 폭염 속에서 연신 삼계탕을 끓여내면서도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김우영

이런 사랑이 들어 있는 삼계탕인지라 노인들에게 더 없이 인기가 높다. 매년 초복 때마다 이곳에 온다는 한 노인은 "고회장이 만들어주는 삼계탕을 먹은 뒤 딴 집 삼계탕은 먹을 수 없어요. 수원시 노인 인구가 9%라는데 지동은 20%라네요. 아마 이집 삼계탕이 소문나는 바람에 딴 동네 노인들이 이사 와서 그럴 거예요"라고 농담까지 하며 껄껄 웃었다.
 

삼계탕 국물까지 모두 비우고 행복한 표정으로 대문을 나서던 한 할머니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맛있게 잘 먹었나보네? 얼굴표정이 좋은 걸보니. 모자라면 얼른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모자 푹 눌러쓰고, 안경도 쓰고 다시 와서 한 그릇 더 먹어. 히히"

 

고성주 회장은 매년 초복이 되면 이렇게 삼계탕을 끓여 노인들에게 대접한다 이 세월이 벌써 30년도 더 지났다. 동네 노인들은 이집에서 초복 삼계탕 먹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회장의 선행은 초복 삼계탕에서 끝나지 않는다. 매년 5월엔 마을 노인을 초청해 경로잔치를 벌이는데 300명 이상이 모인다, 또 가을이 되면 김장김치 1천포기를 담가 불우이웃에 나눠준다. 동지섣달엔 팥죽도 쑤어 가난한 노인들에게 나눠준다.
 

또 있다. 매년 쌀 8kg 200포 이상을 홀몸노인과 장애인 가정에 전달한다. 그가 매년 봉사에 쓴 비용을 어림짐작으로만 따져도 수천 만원이 넘는다. 이렇게 봉사를 한 세월이 어언 40년이나 된다. 자기 자랑도 하지 않았고 소문도 내지 않았다.

 

고성주 회장은 40여 년 전 신 내림을 받은 강신무로서 '큰 무당'이란 칭호를 받을 정도로 무속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다. 춤과 노래도 일가를 이뤘다.
 

특히 그가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경기안택굿을 주목해야 한다. 민속을 연구하는 하주성 씨(70)는 고회장과 40여년의 친분을 이어오는 형제 같은 사람이다. 그는 경기안택굿을 이렇게 설명한다.

"경기도 지방에서 전해진 강신무계열의 굿이다. 말 그대로 집안을 편안하게 만드는 안택(安宅)을 위한 것으로 경기도에서는 각 가정마다 한해가 시작하는 음력 정월이나 음력 10월 상달에 안택굿을 했다. 정월에 하는 안택굿은 가내의 안과태평과 기족들의 무병장수를 위한 굿으로, 10월 상달의 안택굿은 일 년의 평안함 등을 감사하는 굿으로 펼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타 굿이 모두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지만 경기안택굿은 아직도 문화재로 지정 받지 못하고 있다. 종교를 떠나 보존할 만한 가치가 높은 무형유산은 국가와 지방정부가 보존해야 한다. 이 경기안택굿은 뛰어난 예술성이 있다. 보존의 가치가 매우 높다. 우선 수원시와 경기도가 이 무형문화유산을 보존하기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그를 보면 무속인에 대한 편견이 깨진다. 더 없이 편안하고 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남들과 나누기를 좋아한다. 이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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