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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
최정용/시인
2017-07-24 08:08:28최종 업데이트 : 2017-07-24 08:08:2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내일 천안 갈 수 있니?"
어느 날 술청에서 친한 형의 갑작스런 제안에, "왜요?" 했다.
잠깐 뜸을 들이던 그는 뜻밖의 이유를 댔다. "강아지 사러." 어안이 벙벙한 내게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줬다.

아내와 자식들 모두 미국에 살고 있는 그는 이른바 기러기 아빠다. 삶의 유일한 낙(樂)은 사업과 애완견, 써니. 아니, 애완견이 아니라 '종(種) 다른 자식'이 맞겠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그를 깨우고 늦은 귀가에도 어김없이 현관에 앉아 기다리니, 어찌 자식보다 낫지 않다고 하겠는가. 바깥일에 지쳐 축 처진 어깨로 집에 오시는 아버지 반갑게 맞이하는 자식 있으면  손들어 보시라. 

각설하고, 눈빛과 호흡만으로도 그의 심경을 헤아리던 써니가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단다. 아침이면 그를 깨우던 그 아이가 그날따라 불러도 무반응. 그래서 집안 이곳저곳을 찾아 헤맸고 현관 앞에 다소곳이 누워있는 그 아이를 발견했다. 놀란 그의 수차례 인공호흡에도 불구하고 무심(無心)한 그 아이 '불귀의 객(不歸之客)'이 됐다. 순간, 그는 세상에 혼자 버려졌다.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전조(前兆)였다.
전날 밤,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평소와 다르게 그 앞에 인간형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더라는 것. 그 슬픈 눈동자가 그의 가슴에 박혔단다. 다시는 '종(種) 다른 자식'을 들이지 못하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고 머무는 시간 내내 그 아이가 옆에 있는 듯 아른거리고 아침이면 그를 깨우는 목소리가 들려 견딜 수 없더라는 것. 결국 '종(種) 다른 자식'을 찾던 중 천안의 한 가정과 연락이 닿아 가려는데 혼자가기에 가슴이 떨려 같이 갔으면 한다는 제안을 조심스레 한다는 것이 형의 설명.

어찌 거절할 수 있으랴. 그런 사연이 없어도 당연히 나설 길. 흔쾌히 떠났다. 마침내 도착. 고급스런 강아지 6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어미는 방안에 갇힌(?) 신세였다. 애견집안은 만나자마자 달랐다. 두 집안 '애견역사(愛犬歷史)'는 권커니 자커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한참을 듣다 밖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배웅을 받으며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굉음(轟音)'에 가까운 소리가 발밑에서 들렸다. 화들짝 놀라 아래를 보니 방에 갇혀있던 어미가 어느새 탈출, 나를 노려보며 짖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새끼를 데려가는 줄 알았나보다. 더 놀란 견주(犬主)가 내게 사과를 거듭하며 어미를 달래 데려갔다. 그 집을 나오는 내내 그 원한서린 눈빛이 따라왔다. 아직도 그 눈빛과 분노에 찬 소리를 잊을 수 없다.

그 집 앞에서 형을 기다리며 얻은 한 소식(見性).
'그래 적어도 어미라면 저 정도 결기는 있어야지. 그게 모성(母性)이지.' '종(種) 다른 자식'을 찾아 먼 길을 떠나 온 형이 동행을 권한 것도 이런 이유리라.

곡선동 애견공원
곡선동 애견공원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인간말종시대(人間末種時代)', '아동(兒童)' 옆에 '학대(虐待)'가 자연스레 붙은 비정한 시대다. 하여, 혹자는 이 시대를 이렇게 혹평한다. '세상에는 네 발 개보다 두 발 똥개가 더 많다'고.
그날, 견성(犬性)이 선물한 견성(見性)이 내게 묻는다. 
'세상은 아직 살만한가?'

견성, 애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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