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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센코보다 300년 앞선 고상안의 맥류 춘화처리 이론
김재철/농학박사, 칼럼니스트
2017-12-10 14:14:40최종 업데이트 : 2017-12-10 14:14:46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기자
1936년 12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레닌 농학아카데미에서 리센코(lysenko)는 '유전학에서의 두 경향' 이라는 발표를 통해 멘델 등 유전학자들을 통렬히 비난하고, 변증법적 유물론 이념에 부합되는 자신의 진정한 사회주의 생물학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여 줄 것을 당에 요구했다. 리센코는 우크라이나 출생으로 1932년 식물 생장시기에 온도와 빛이 필요한 단계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것을 근거로 가을에 심는 밀을 인위적으로 저온에 저장한 후 봄에 심어 수확하는 춘화처리(春化處理, vernalization) 연구로서, 환경조작에 의해 획득형질의 유전을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멘델법칙에 입각한 정통 유전학설을 비판하고 환경에 따른 생명체의 가변성(可變性) 을 인정하는 리센코 학설을 주장하였으며, 1948년 반대파를 추방하는 데 성공하였다. 소련 과학계는 큰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이후 학자들은 대학에서 더 이상 멘델주의 유전학을 가르칠 수 없었고 연구소는 폐쇄되었다.

보리밭

보리밭

가을에 파종하는 보리·밀은 자라기만 하는 성질, 즉 이삭이 패지 않는 추파성(秋播性)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추파성은 저온처리로 제거할 수 있다. 따라서 가을에 파종한 보리·밀은 겨울을 지내는 동안 저온에 접촉하여 스스로 추파성을 없애고 이삭을 나오게 한다. 물론 가을보리·밀을 봄에 파종하면 겨울철 저온을 접할 기회가 없기에 추파성을 없애지 못해 이삭이 나오지 못하고 들판의 잡풀처럼 자라기만 한다.

리센코는 가을 밀 종자를 싹 띄어 젖은 상태로 0℃내외로 30일 정도 저장하면 봄에 파종하여도 정상적으로 이삭이 나온다고 하여 1960년대까지 그의 춘화처리 이론이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생물학 이론에 기초한 농업생산 부진과 과도한 정치적 행동 때문에 1955년 농업과학 아카데미 총재직을 사임하고, 1965년 모스크바 유전학 연구소장직을 사임하였다. 정치적 요소가 결합된 그의 농업생산 이론이 소련에서 폐기되자 그 이론은 한때 중국으로 건너갔다.

함양군수, 풍기군수 등을 역임하고 고향 경북 문경에 돌아와 농사연구에 몰두하던 고상안(高尙顔)은 67세가 되던 광해군 11년(1619년), 그의 연구서인 농사교본 '농가월령(農家月令)'을 편찬한다. 이는 농민들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실용적인 농사교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서두에서 농(農)이 아니면 의식(衣食)이 없게 되고 의식이 없으면 생활을 하지 못한다 하여 농사에 주력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 월·순별로 농가에서 진행해야 할 농사일과 농사짓는 법 등을 작자의 체험을 토대로 체계적이고도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겨울철 눈이 많이 내려 보리파종시기를 놓쳤을 때를 대비하여 그는 '얼보리(凍麰) 저온처리 후 파종'하는 방법을 내세운다. 얼보리 파종 방법은 대한(1월 20일)에 보리 종자를 물에 불리어 움집에 두고, 입춘(2월 4일)에 싹 튼 종자를 꺼내어 밖에 두었다가, 우수(2월 19일)이후에 파종하고, 늦어도 춘분(3월 21일)까지는 파종해도 괜찮다고 하였다.

농가월령 책의 한면

농가월령의 일부분

이를 풀어보면 대한에서 입춘까지 약 15일, 입춘에서 우수까지 약 15일, 따라서 약 30일간 저온처리 즉 1월~2월의 문경 지방 최저기온이 -8~-10℃의 등온선으로 보아 춘화처리를 한 셈이 되고, 손쉽게 추파성이 소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봄에 파종해도 출수(이삭 패기)가 가능하다. 그는 기상이변으로 제때에 가을보리를 파종하지 못해 상심하는 농가를 염려하여, 흉년에 대비하고 민중의 삶을 개선하고자 가을보리를 봄에 파종할 수 있는 획기적인 영농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고상안은 '농가월령'에서, 무릇 농가에서 하여야 할 일을 절기마다 기록하여 때를 놓치지 않도록 하고 이를 힘을 기우려 실행하면 비록 흉년을 만난다 하더라도 굶주림과 추위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그의 '얼보리 저온처리 후 파종'하는 방법은 농민이 제때 보리파종을 하지 못하였을 때를 대비한 것으로, 정치적 입장에 영합한 리센코의 터무니없는 가변형질 유전 주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상안은 리센코보다 300년 앞서 맥류의 춘화처리 이론을 실용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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