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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과 도리(道理)
최정용/시인
2017-03-26 15:57:45최종 업데이트 : 2017-03-26 15:57:4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그릇이 있다, 사람에겐. 됨됨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의 그릇 크기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고 선조들은 누누이 충고한다. 처지와 분수를 알라는 말이겠다. 뱁새는 황새를 따라하지 말라는, 그래야 가랑이를 지킬 수 있다는 협박성 격언이기도 하다. 자신의 역량에 맞는 자리에서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도리(道理)를 알라'로 축약될 수 있다.

동양철학자 김해영 박사(전국공무원노조 수원시지부장/수원시 민주공무원노조위원장)가 꼽는 도리(道理)에 충실한, 즉 '모두가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최고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은 이윤(伊尹)이다. 
김 박사에 따르면 이윤은 벼슬에 나아가면서 자신의 뜻을 이렇게 설파한다. '하늘이 이 민중을 낸 것은 먼저 깨달은 이로 하여금 뒤에 깨닫는 사람을 깨닫게 하고자 하는 것이니, 자신이 장차 이 도리(道理)로써 뒤에 알고 깨닫는 민중들을 깨닫게 해 하늘의 부탁을 져버리지 않으리라!' 김 박사는 이 말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여 요순시대(堯舜時代)의 삶을 누리지 못했다면, 모두가 '자신의 탓'으로 여겼다"고 풀이한다. 또 이렇게 덧붙인다, 백미(白眉)다. "오늘날에도 통할 수 있을까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스스로의 재주로 세상을 이롭게 한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그 도리를 지킨 이들이다. 자신의 기량의 크기와 맞지 않는 자리에 있으면 어김없이 사단(事斷)이 났다. 

중국 역사에 좋은 예가 있다. 봉추(鳳雛) 방통과 하진(何進)이 그들이다 제갈공명과 어깨를 나눈 인물인 방통은 처음에 시골 현령을 맡았을 때는 매일 술만 마시며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 서촉 정벌군의 군사(軍師)로 임명됐을 때는 지략을 발휘해 큰 공을 세운다. 불운의 기습을 받아 세상을 떠난 이야기는 유명하다. 아, 60년 세월을 술과 낚시로 보내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훌륭하게 치세(治世)를 펼친 태공(太公) 강상(姜尙)도 있다. 세월을 잘못 만난 천재는 예나 지금이나 술에 의탁했다, 진리다. 

그러나 읽는 재미는 후자에 있다. 능력에 비해 높은 자리를 탐해 결국 깜냥에 맞지 않은 자리에 오르다 몰락하는 군상(群像)들이 주는 교훈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들이 현재에도 많기에 그들의 삶이 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진이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 후한 말 조정의 권력은 십상시(十常侍)라 불리는 환관들에게 독점된다. 십상시의 매관매직(賣官賣職)은 일상이 됐고 허수아비 황제, 영제(靈帝)는 여색이나 탐할 뿐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때 후궁 하 씨가 황자 변을 낳자 황제는 황후를 쫓아내고 후궁 하 씨를 황후의 자리에 올린다. 백정이었던 하 황후의 오빠 진은 동생 덕분에 벼슬을 한다. 동생 배경은 그의 벼슬을 고공행진 했고 마침내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대장군에 임명돼 군부를 단숨에 손아귀에 넣는다. 권력의 정점이다. 게다가 하 황후는 후궁인 왕 씨가 황자 협을 낳자, 왕 씨를 독살하고, 황제의 모후인 동 태후에게 협 황자를 기르도록 한다.

중병에 걸린 영제는 협 황자를 태자로 삼고 싶었지만 이미 권력의 핵심이 된 하진의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하다 세상을 떠난다. 마침내 하진의 시대. 그는 십상시의 우두머리인 건석을 살해하고 누이의 아들인 변 황자를 황제로 즉위시켜 대권을 거머쥔다. '물들어 왔을 때 배 띄운다'는 결기로 환관척결에 나선 그는 원소, 원술, 조조 등 참모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의 군웅을 불러 환관들을 제거하려 한다.'자신의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격문을 보내기고 '때는 이때'라고 여긴 동탁과 정원 등은 낙양 외곽에 도착, 때를 넘본다. 그러나 십상시가 누군가. 하이에나보다 더한 생명력으로 하 태후의 치맛자락을 잡고 하진 제거를 도모한다. 결국 하 태후의 친서를 받아 하진 혼자 입궐시켜 그의 목을 친다. 하진은 천하의 병권을 믿고 십상시를 무시하며 디딘 걸음, 그 길로 세상을 하직한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하진의 호위병들은 격분해 궁궐에 불을 지르고 환관, 궁녀는 물론 그 가속들 2천여 명을 무참히 죽인다. '장락궁의 피바람'이다. 이 와중에 진시황 이후 400년을 이어온 옥새가 사라지고 후한은 멸망의 길로 들어선다.

하진의 역량이, 또 그릇이 조금만 넓었다면 후한말의 난세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역사가들의 평가다.
하진과 누이 하 황후의 농간과 부침과정을 보니, 이상하게 데자뷔(Deja-vu)다.

봄이다. 늦기 전 돌아보자. 지금 이 자리가 내 자리인지, 아닌지. 과연 내게 맞는지 아닌지를.

 

지금 이 자리가 내 자리인가?
이곳이 내 자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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