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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경로당
윤수천/동화작가
2017-01-08 11:46:28최종 업데이트 : 2017-01-08 11:46:2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필자의 동화 가운데 '할아버지와 보청기'란 작품이 있다.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영우는 아빠가 사다 드린 보청기를 경로당에 들어갈 땐 꼭 빼어서 주머니에 넣는 할아버지를 도통 이해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시도 빼놓지 않는 보청기인데, 왜 경로당에 들어갈 때만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것. 궁금한 나머지 동생과 같이 할아버지의 뒤를 밟는다. 

역시 이날도 할아버지는 경로당 문 앞에서 슬그머니 보청기를 빼더니 주머니에 넣는다. 영우는 동생과 같이 발돋움을 해가지고 유리창 너머로 경로당 안을 훔쳐본다. 그때 할아버지들의 웃지 못할 광경이 펼쳐진다. 귀가 어둡다 보니 할아버지들의 대화는 서로 어긋나게 마련이고 같은 말을 또 묻고 또 대답하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영우는 한 동네에 사는 이웃집 할아버지에게 들키고 마는데, 그 할아버지의 말이 또한 걸작이다. 딴 할아버지들의 귀가 다 어두운데 너희 할아버지의 귀만 혼자 밝으면 되겠느냐고 한다.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들은 그래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긴 하루해도 어느새 저물게 된다고.

이 동화는 보청기를 끼고 다니는 전 직장 동료 H가 모델이다. 그는 보청기를 끼고 다니는 데도 종종 남의 말을 못 듣는데다가 엉뚱한 말을 해서 웃음을 자아내곤 했다. 한 어린이 잡지사에서 노인의 세계를 소재로 한 원고 청탁이 왔을 때 문득 떠오른 게 바로 H의 보청기였던 것이다. 여기에다 무대를 경로당으로 삼고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꾸며졌던 것. 

며칠 전 한 일간지엔 '할매·할배 책읽는 방'이란 기사가 소개된 바 있다. 제목이 하도 흥미로워서 읽어 보니 장기 두고 화투 치던 경로당이 책 읽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기사였다. "마을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와서 화투나 술 말고 문화적으로 즐길 거리가 있었으면 해서 시도해 본 건데, 예상외로 좋아들 하시네요." 경로당 회장의 말이다.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리는 법. 소문을 들은 한 독서단체에서 책을 보내주었고 마을 사람들도 집에서 낮잠 자는 책을 한두 권씩 들고 와서 보태다 보니 제법 그럴 듯한 도서관이 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환경은 사람도 바꾼다고. 화투나 장기 대신 책을 쥐어주니 처음엔 어색해 하던 이들이 차츰 책의 재미에 빠지더라는 것. 그리고 이제는 으레 책을 끼고 사는 경로당이 됐노라고. 

이 얼마나 봄볕 같은 환한 소식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경로당의 모습은 조금은 비생산적이고 비교육적인 풍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운데서도 화투는 빼놓을 수 없는 감초 같은 것이어서 경로당 하면, 으레 화투판을 연상하게끔 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다 심심찮게 벌어지는 화투판의 말다툼과 시비 문제는 간혹 '사건'까지 발생시켜 경로당의 이미지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끼쳤는데...그러니 봄볕 같은 환한 소식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책 가운데서도 동화는 어린이는 물론 나이 든 이들도 좋아한다. 내가 글쓰기를 가르치는 수강생 가운데는 경로당이나 유치원을 찾아가 동화를 읽어주는 할머니가 있는데, 눈빛 초롱초롱한 어린이들 못지않게 열심히 들어주는 경로당 할머니 할아버지들에 대한 칭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가 책을 읽어주면 왜 그분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줄 아세요? 동화 읽는 법을 배워서 자기네 손녀 손자들에게 읽어주겠다고 해서 그러는 거지요. 그 손녀 손자들이 이담에 커서 어른이 됐을 적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읽어 준 동화 생각을 한다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다들 갖고 있어요. 그게 바로 자손 사랑 아니겠어요?"

옳은 말이다. 사랑은 그렇게 대물림했을 때 더욱 아름답다. 그것은 마치 육상경기의 계주 주자들이 바통을 주고받는 모습과 흡사하리라. 계주의 묘미는 바로 그 바통 터치에 있는 것. 나는 계주 경기를 관람할 적엔 트랙을 달리는 선수 못지않게 바통 터치 모습에 더 시선을 빼앗긴다. 그 찰나의 순간이 바로 순위의 갈림길임을 수없이 봐 왔기 때문이다.

 

책 읽는 경로당_1
책 읽는 경로당_1

책 읽는 경로당. 나는 우리나라 경로당이 앞에서 말한 경로당을 본받아 새롭게 태어났으면 한다. 경로당에 들어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꺼내들고 가서는 어릴 적 동화책 읽던 때처럼 열심히 읽는 모습은 얼마나 보기 좋을까. 그리고 각자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새해다! 올해엔 새롭게 태어난 경로당들의 환한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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