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말 모 일간지 신문기사 중에, 창간 70주년 기획 시리즈물 취재차 어느 초등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수업을 참관하였다는 내용이 있었다. 담임선생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대한민국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얘기해 볼까요?" 의외로 "야근" 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칠판에 단어를 적던 교사는 놀라 뒤돌아봤다. 옛 일본식 관사 그 시절.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이상하게 사무실 분위기가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선임자들은 하나 둘 책상 앞에 앉아 부스럭 부스럭 부산하다. 무릇 업무는 근무시간에 열심히 끝내면 퇴근 후 할 일은 그리 마땅치 않다. 나는 과감하게 책상을 정리하고 퇴근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와 있던 시절이었다. 하기야 야근을 한다 해도 한 끼 짜장면 값이 부담되는 급여수준이었다. 어느 날 퇴근시간. 슬며시 책상 앞에 다가오던 옆 부서 선임자가 허접스럽게 물어왔다. '왜 일찍 퇴근하느냐' 나는 되물었다. '복무규정에 퇴근시간은 왜 있는 거냐'. 그러자 '상사가 퇴근을 안 하고 있는데 어디서 (말단이) 먼저 퇴근하느냐'고 힐난했다. 나는 정색하고 말했다. '관사에서 생활하는 선임자 여러분들은 낮에도 가끔 집안을 들락거리고, 퇴근시간이 가까이 오면 슬며시 집에 가 요기하고 책상 앞에 앉는다. 그것이 야근인가? 그렇다면 퇴근과 야근이 무엇이 다른가?' 이후로 누구도 정시퇴근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새로운 관리자가 발령받아 외진 관사(직급별 관사 위치가 달랐다)에 오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는 누워 지내야 할 정도로 병약하여 출근부 정리커녕 한 번도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황당한 것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직원들은 더없이 자유스럽고(?) 웬만한 결재는 그를 비껴갔다. 좋게 말하면 울타리 안 관사에서 24시간 병을 다스리면서, 겨우 업무 인지(認知)만 할 정도였다. 그가 사망한 후 후임 관리자는 그 관사를 폐기하였다. 업무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고 단정하기 어려웠던, 수십 년 전 우리 부서 관리자의 관사근무(?) 형태와 요즘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특정일에 서면보고와 전화로 국정을 운영했다는 청와대 관저 집무행태가 새삼 비교된다. 그때 그 병약한 관리자가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는다고 대놓고 탓하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눈 뜨면 출근, 잠자면 퇴근, 그래서 하루 종일 근무'라는 요즘도 회자하는 명언(?)을 심심찮게 이죽거리며 지내왔던 기억을 새삼 떠올린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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