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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엄마가 보고 싶다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7-05-28 11:24:47최종 업데이트 : 2017-05-28 11:24:47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어머니는 깔끔하셨다. 소금으로만 간을 맞춘 맛깔스런 동태전골, 하얀 밥알이 동동 뜨는 맑은 식혜, 생태 알로 만든 별미, 어란(魚卵) 등 음식솜씨도 깔끔하셨지만, 이웃들과 함께 한 음식그릇을 설거지하고 난 뒤, 성에 차지 않으면 그 그릇들을 다시 설거지할 정도였다. 

어머니는 내심 강했다. 6.25 동란 당시 미처 피난가지 못한 우리 가족은, 아버지는 천정에 숨어계시고, 다섯 살 난 나는 방문에 막아 놓은 이불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소리만 나면 이리 저리 방안을 돌아다니며 놀라기 일 수였다. 그 시절 어머니는 친정 마을, 무학대사가 밟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답십리 마을에 들러 양식을 구하곤 했다. 양식자루를 머리에 이고 동대문 집까지 걸어오면서 몇 번이고 쉬고 또 쉬고. 무거운 양식자루를 다시 머리에 얹을 때는 혼자 힘으로는 어려워, 어느 때는 지나가는 인민군 병사를 불러 세워 머리에 얹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1935. 시댁 몰래 사진관에 들러 한방 찍었다는 어머니
1935. 시댁 몰래 사진관에 들러 한방 찍었다는 어머니
그리고 1.4후퇴. 어머니는 네 살 터울 누나, 나, 젖먹이 여동생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다. 아버지는 직장 따라 먼저 대구로 내려가셨기에, 어머니 혼자 자식들을 데리고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옆 테두리가 없는 무개(無蓋)화차를 이용하였으며, 화차 가장자리는 이불 등 보따리로 둘러 막아놓고 아이들을 그 가운데에 앉혔다. 증기기관차는 굉장히 느렸으며 자주 멈췄다. 기차가 멈출 때에는 지역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주먹밥 등을 팔던 광경이 새롭다. 얼마 동안 갔는지는 몰라도 대구역(동대구역?)에 도착하니, 많은 피난 인파 속에서도 아버지는 식구들을 찾아냈다. 

어머니는 실용주의 실천자다. 가끔 여름철에도 춥다 느껴지면 스웨터를 챙겨 입고 산책길에 나섰다. 여름철에 웬 스웨터냐고 물으면, 내가 추운데 스웨터면 어떻고 몸뻬(もんぺ)면 어떠냐고 되돌아본다.

세월이 흘렀어도 어머니는 가끔 주방 그릇들을 정리했다. 그런데 우연히 주방을 들여다보다 사기 밥그릇 표면에 고춧가루 한 점이 붙어있는 것이 눈에 띠었다. '그렇게도 깔끔하신 분이 고춧가루 한 점을 놓치셨구나'. 어머니는 늘 젊고 건강한 분으로만 생각하였던 나는 순간 '아차, 팔순이 넘으셨지'라는 생각에 싱크대 앞에서 소리 없이 통곡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심을 예견하셨는지 모시옷, 한복 한 벌, 이불, 요 한 벌과 평소 몸에 지니고 계시던 염주, 불교 서적들 그리고 TV장식장 한쪽의 '초이스'커피 등 소지품 몇 종만을 남기셨다. 돌아가시면서도 자식들에게 끼칠 불편을 최소한도로 줄여주기 위함이었을 게다. 소지품 중에는 표지가 낡고 조그만 모 국회의원 홍보용 수첩과 색동무늬 손지갑이 있었다. 

수첩을 들쳐보니 어머니가 직접 쓰신 자식들과 친지 분들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맨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난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뒤표지의 까만 비닐 사이에 빠끔히 내민 내 대학시절 증명사진 그리고 어릴 적 찍은 가족사진(사진 찍기 싫다고 도망가는 바람에 여기에는 내가 없었다). 아마도 가족사진 중에 내 얼굴이 없어 따로 대학 때 사진을 간직하고 계셨었나 보다.

색동무늬 손지갑은 대학시절 학우에게서 얻은 것이다. 금은방을 하면서 손님들에게 사은품으로 건네던 지갑이었다. 나는 이 지갑을 어머니에게 드렸다. 그리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평범한 이 지갑을 평생 곁에 두고 지냈다. 색동무늬가 예뻤다기보다는 당신 자식이 드렸기 때문일 게다. 어머니는 이 지갑을 30년도 넘게 간직하셨다. 오직 자식 잘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내가 평범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어머니의 음덕일 게다. 엄마가 보고 싶다.

1951. 대구 피난시절. 건물은 동대구 기상관측소
1951. 대구 피난시절. 건물은 동대구 기상관측소

5월, 엄마가 보고 싶다, 김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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