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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매천(梅泉) 생각
최정용/시인
2016-03-26 10:42:33최종 업데이트 : 2016-03-26 10:42:33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해 4월 하늘에 슬픈 비가 내린다.
조선왕조실록에 노란 비라 불리던 황사, 지구가 스스로 정화시키기 위해 뿌린 방향제일 게다.

황사(黃砂)가 불결하다는 건 현대 인류의 자의적 해석.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불필(不必)이 있겠나. 불필은 오직, 한반도 고승의 육신을 빌어 나온 딸의 법명(法名)일 뿐.
어미와 자신을 버리고 절집으로 떠난 아비를 찾기 위해 삭발을 했던 딸이 서울 인사동 어느 줄거리에서 승복을 입고 이미 고승(高僧)이 된 아비에게 삼배(三拜)를 했대나 뭐래나.
육조 혜능까지 가지 않더라도 마조거나 임제거나, 가까이에는 성철이거나 서옹선사 등 세상 어디 슬프지 않은 영혼이 있을까, 싶은 계절이다. 

멀리 서양의 어느 시인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est month)'이라고 했던가. 토양(土壤)이 다를지라도 4월은 우리에게도 잔인하다. 민주주의를 꽃피운, 이제는 꽃피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 시절도 19일, 4월이었고, 수많은 젊은 꽃들이 피고 진 계절도 4월이었으니 말이다. 아, 호헌(護憲)선언도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을 게다. 4월 13일, 4월에는 '날'이 많다.

차라리 만우절만 같았으면, 웃으며 넘어갔을 그 계절을 지금 지나고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도 있다. 13일이다, 코미디 보다 못한. 개그는 웃음이나 주지, 선거를 앞둔 저네들의 몸짓은 슬픈 자화상이다.

정치를 세련되게 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네 유전자일지도 모른다. 비겁한 변명일까. 상대방을 존중하고 의지를 검증하는 점잖은 일들은 정치판에서 잊혀진지 오래. 그나마 희망의 싹을 보는 건, 수원지역 몇몇 선거구 경선후의 모습에서랄까. 더불어민주당 수원갑(장안)과을(권선) 등에서 경선 패자가 승자를 축하하고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모습 정도다. 국회 입성을 자신의 정치경제적 생존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이들의 얄팍한 수가 판을 치는 이 4월, 정치의 계절에 시민은 어떤 희망을 가져야할까.  

수원은 의기(義妓)와 충절의 고장.
누가 있어 우리의 4월을 추억할까. 환경과 생태, 친(親)자연으로 가는 길도 얄팍한 이기(利己)로 재단하는, 재단하려는, 이 시대에 대의(大義)는 어디에 있을까, 있는가, 묻노니 답이 보이지 않는다. '나만 정의(正義)'인 시대.

감히 정의를 묻는 것조차 호사로운 계절, 매천(梅泉) 황현의 기개가 그립다.
그의 절명시(絶命詩) 한 구절로 잡문을 닫는다.

4월, 매천(梅泉) 생각_1
4월, 매천(梅泉) 생각_1
'亂離滾到白頭年 幾合捐生却未然/今日眞成無可奈 輝輝風燭照蒼天/妖氣掩翳帝星移 九闕沈沈晝漏遲/詔勅從今無復有 琳琅一紙淚千絲/鳥獸哀鳴海岳嚬 槿花世界已沈淪/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無支廈半椽功 只是成仁不是忠/止竟僅能追尹穀 當時愧不躡陳東'
(난리 통에 어느새 머리만 희어졌구나/몇 번 목숨을 버리려 하였건만 그러질 못하였네/하지만 오늘만은 진정 어쩔 수가 없으니/바람에 흔들리는 촛불만이 아득한 하늘을 비추는구나/요사한 기운 뒤덮어 천제성(天帝星)도 자리를 옮기니/구중궁궐 침침해라 낮 누수(漏水)소리만 길고나/상감 조서(詔書) 이제부터는 다시 없을 테지/아름다운 한 장 글에 눈물만 하염없구나/새 짐승도 슬피 울고 산악 해수 다 찡기는 듯/무궁화 삼천리가 이미 영락되다니/가을 밤 등불아래 책을 덮고서 옛일 곰곰이 생각해 보니/이승에서 지식인 노릇하기 정히 어렵구나/일찍이 조정을 버틸만한 하찮은 공도 없었으니/그저 내 마음 차마 말할 수 없어 죽을 뿐 충성하려는 건 아니라/기껏 겨우 윤곡(尹穀)을 뒤따름에 그칠 뿐/당시 진동(陳東)의 뒤를 밟지 못함이 부끄러워라) 

*. 윤곡(尹穀) - 몽골 침입 때 자결한 사람
*. 진동(陳東) - 당시 참형당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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