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무더위 소고(小考)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6-08-22 07:26:47최종 업데이트 : 2016-08-22 07:26:47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연일 숨 막히는 찜통더위가 이어간다. 하루가 멀다한 폭염특보에 전국 대부분이 초열(焦熱)지옥에 떨어진 느낌이다. 

이규보는 "찌는 더위는 불보다 뜨거워 천개 화로(千爐) 속 숯불에 부채질 하듯 하네"라 하고, "누워서는 벌떡 일어나려 하고 일어나서는 다시 벗고 누우려 하네"라 하여 '지독한 더위(苦熱)'에 어찌할 줄 모르는 심정을 토로했다. 

장유(張維)는 "화제(火帝)가 하늘을 맡아 축융(남방의 불귀신)을 마구 부려먹어 온 세상이 화로 속에서 활활 타네". 그리고 당나라 왕곡은 "불타는 해 정오 자리에 꼼짝 않고 있는 듯, 온 나라가 화로 속에 있는 것 같네"라 하여 선인들은 '지독한 더위'를 불길 화로 속에 비유하였다. 

한술 더 떠서 윤기(尹愭)는 "태양의 열기가 어찌 이리 맹렬한지 불 양산을 펼쳐 화로를 에워싼 듯"하다며 '지독한 더위'에 정점을 가했다. "한 해 한 번 더위를 견뎌왔으나 금년은 견뎌내기가 너무 어렵네"라는 정약용의 '지독한 더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올 여름은 너무 덥다. 

무더위에 생활풍속도 달라진 느낌이다. 가정요리 대신에 배달음식을 먹는가 하면, 주문건수도 폭염이 시작되기 전보다 30% 정도 늘었다고 한다. 젊은 층 모임은 모텔이 인기 있는 피서지로서, 먹을 것 사들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시원하게 지낸다고 한다. 이에 숙박앱 예약서비스 이용건수가 60% 증가했다. 또한 일부 직장인들에겐 차라리 회사를 피서지로, 휴가도 늦추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여 모범사원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무더위 소고(小考)_1
무더위 소고(小考)_1

그렇다면 에어컨 없던 선인들은 어떻게 더위를 이겨냈을까?
정조(正祖)의 "더위를 물리치는 데 독서만 한 것이 없다"듯, 선비들이 가장 즐긴 피서(避暑)는 피서(披書)였다. 피서는 가벼운 책 읽기다. 

윤증(尹拯 1629∼1714)은 "구름은 하늘가에 머물고 있고 나뭇가지에 바람 한 점 없으니, 누가 이 큰 화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을 고채(菰菜)를 맛보거나 수정처럼 차갑게 될 방법 도무지 없으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몸을 바르게 하여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제일이구나"라며 피서(披書)를 내세운다. 

또한 연암 박지원은 "사람들이 심한 더위와 모진 추위를 만나면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듯 하다"며, "옷을 벗거나 부채를 휘둘러도 불꽃같은 열을 견뎌내지 못하면 더욱 덥기만 하고, 화롯불을 쪼이거나 털배자를 껴입어도 찬 기운을 물리치지 못하면 더욱 떨리기만 하는 것이니, 모두가 책읽기에 마음을 붙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라고 종형(從兄)에게 올린다. 

다만 정약용은 '더위를 식히는 8가지 방법(消暑八事)'에서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를 한 방편으로 삼고 "더운 날에 졸음이 와서 책 보기는 싫어라, 손님 모으고 바둑 구경 그 계책이 괜찮구려" 하여 더위를 식히기 위해 책 보기보다는 바둑구경이 괜찮다고 하였다.  

독특한 선인도 있다. 정경세(鄭經世 1563~1633)는 무더운 날에 문을 닫고 방안에 앉아 더위를 이겨냈다. 모두들 어리석다고 비웃었지만 "방속 깊이 있는 나를 괴이하게 여기지만 고요 속에 서늘한 기운이 있는 것을 누가 알리". 이는 "내가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라는 사제 토마스 아 켐피스의 말과도 통한다. 

선인들을 본받아 책으로 둘러싸인 구석쟁이 방에 틀어박혀 상상력을 발휘하고, 가볍게 책을 읽거나, 미적미적 귤중지락(橘中之樂)에 빠져도 온 몸이 후덥지근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래저래 하삭음(河朔飮)으로도 더위를 감내하기 어렵다. 연암 박지원이 털어놓듯 "요컨대 자기 '마음속 더위'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절실하다.

하지만 올 더위 속에서도 '개·돼지들'의 슬픈 소식과 독선, 불합리가 판을 친다. 급기야 "나무에 붙은 매미는 울음소리 사라지고 털토시에 앉은 매는 하늘 솟을 마음이 없다". 이미 "혹독한 더위와 불같은 수심이 함께 오장육부(五臟六腑)속에서 서로 볶아 대기에", 계절이 바뀐다 해도 내 '마음속 더위'는 언제쯤 빠져나갈지 걱정이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