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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따라 느리게 흘러가는 세월’
최형국/역사학 박사.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시범단 상임연출
2016-12-16 12:18:34최종 업데이트 : 2016-12-16 12:18:34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책장 따라 느리게 흘러가는 세월'_1
수원 헌책방 오복서점의 주인장 아저씨의 모습. 수많은 책과 책들 사이에서 조심스런 지식의 매개체 역할을 지금 이 순간도 진행하고 있다.

수원의 작은 헌책방 오복서점은 지금도 거대한 지식의 집합소이자 배송처이기도 하다. 과거 가장 화려했던 수원의 남문 중심상권이 쇠락해질 즈음 오목서점은 문을 열었다. 주인장인 안정철씨(60)는 지금도 늘 그렇게 그 공간을 지키고 있다. 1990년 서울살이를 접고 수원으로 온 그는 처음에는 지금은 화성행궁 광장으로 조성된 그곳에 8평짜리 작은 헌책방을 열었다. 이후 화성행궁과 광장을 복원하면서 그 자리가 헐려 비록 지하지만 2005년 3월 현재의 위치에 33평 둥지를 틀었다. 인터넷사이트(www.obookstore.co.kr)도 13년전 오픈했을 만큼 다양한 작업을 진행했지만, 헌책방이라는 이름처럼 여전히 판매는 미진한 편이다. 

주인장과 말을 나눴을 때 가장 먼저 나온 말은 치명적이었다. "요즘 책을 사가는 손님이 거의 없다. 수원 사람들이 책을 거의 안본다고 느껴질 지경이다." 효의 도시이자, 새롭게 인문학의 도시를 표방하는 수원사람들이 책에 대해 너무 인색하다는 말일게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역시 수원에 살며 인문학자를 표방하며 다양한 글을 쓰고 책을 몇 권 출판했지만, 정말 책이 안팔린다는 그의 말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심각한 독서미달의 공간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사실이 민망하기 그지없을 정도다.

꼬리 긴 책장들에는 수천 아니 수 만 가지 지식을 담고 있는 책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다. 저마다 고된 글쓰기 작업을 통해 세상에 만들어진 책들이 이곳에서 마치 무덤 위 표지석처럼 글쓴이의 뭔가를 조용히 이야기하는 듯 하다. 주인장은 손님이 원하는 책들을 긴 지식의 터널 속에서 힘겹게 꺼내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제대로 임자를 만난다면, 이 지하 세계를 떠나 또 다른 지식을 잉태할 수 있도록 책은 지혜의 씨앗이 될 것이다.

헌책방에 대한 미래는 엄청 어둡다고 매 이야기마다 회색빛깔의 표현이 묻어 나온다. 당장 수원 남문만하라도 과거에는 상당히 많은 새책 매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책을 파는 공간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쉽지 않다. 마치 수원의 중심 상권이 영통으로 옮겨가며 과거의 영화로웠던 이곳 화성의 성내가 쇠락해지듯이 책방들도 그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학교 앞에는 교과서나 참고서 관련 책들이 학생들의 필수지참물이어서 몇 군데는 존재하지만, 일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서점은 씨가 말라간다. 주인장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지금의 상황은 "아주 창피한 지경이다"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사람들은 모두 목이 부질 듯 손에 든 스마트폰에 정신을 집중하고 거리를 지나다닌다. 이것은 비단 수원만의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서울의 지하철을 타면, 약 80-90% 이상의 사람들이 각각의 작은 네모상자에 두 눈을 빼앗기고, 두 귀에는 이어폰으로 꽉 막아 그 어떠한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모습들로 가득하다. 

이미 사람들은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책장을 한 장씩 넘기는 '접촉'의 순간을 포기한지 오래다. 이제 그들은 오로지 작은 손가락 끝으로 또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는 '접속'을 통해 세상과 마주하고 있다. 아니 그들만의 세상 속으로 항상 접속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모습을 그려가고 있다. 현재 스마트폰 유지비는 매달 몇 만원이 훌쩍 넘게 재깍재깍 지불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 비용만큼 새책이든, 헌책이든 인쇄매체에 투자를 하지 않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만약 그 절반만큼 아니 반에 반만큼이라도 책에 관심이 더해졌다면, 우리나라의 독서수준은 OECD가입국 중 하위권을 이미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수원 팔달문 근처 지하 지식의 세계, 오복서점의 작은 계단을 걸어올라 스산하게 불어오는 겨울바람과 마주한다. 헌책방이 오래된 '지식의 무덤'이 아닌 새로운 창작물을 잉태하는 새로운 '지식의 텃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지금 이순간도 사람들은 스마트한 세상에서 검지 손가락을 열심히 위로 밀어 올리며 이 글을 보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책장을 넘기다가 손가락을 베이는 날카로운 추억은 영영 잊힐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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