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명절이 싫었다. 설의 추억_1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로 알려진 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가르침은 받아들이는 사람만 새기는 덕목이리라. 그 이야기를 알지도 못하던 나이에, 까까머리 소년은 10리(里)길을 걸었다. 왕복 20리(里)다. 강원도 강릉 섬돌-아는 사람만 아는-의 추억이다. 갓과 건을 쓰고 새벽길을 걷던 그 분들은 지금 구천을 지나 유림(儒林)의 무덤에 쉬시겠다. 그리고 닿은 곳에서 위패를 향한 간절함이 이어졌다. 조상의 종교와 관계없이 모두 '유인(孺人)'이었던 시절. 지금도 그렇지만. 제사의 품목이 유교의 전통이었으니, 그래도 좋았다. 피붙이들이 모였으니까. 종교가 인류를 행복하게 한 적이 없으니, 그러리라. 멋모르고 과식(過食)했던 큰댁의 떡국은 아직도 배 안을 유영한다. 갓을 쓰고 걸었던 그 어르신들의 뒤를 따라다닌 그 시절. 발뒤꿈치만 보이던 기억. 추워서 참 싫었던 어둠. 귀 볼을 베고 가던 바람. 어른이 되면 이런 일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철없는 결기. 설날은 어둠에서 시작해 해를 안고 왔다. 그 새벽이 가뭇하다. 아련하다. 부친의 연세에 내 나이가 서 있다. 후대에게 무엇을 전해줄까, 막막하다. 전통(傳統)을 잊었다. 소설가 이외수의 표현을 빌리면 수 만개의 바늘이 살갗을 찌르던 그 추운 겨울날 어린 손자의 손을 끌고 족보를 펴들고 몸으로 삶을 가르치던, 최춘영(春泳), 우영(禹泳), 최명방(明邦, 권오춘(五春). 그 어르신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이을 수 있을까, 힘들겠다. 설을 맞으며,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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