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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駱山)부부에게 고함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5-10-03 12:11:16최종 업데이트 : 2015-10-03 12:11:1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오늘 새벽. 그저 때만 기다리듯이 조용히 누워있으려니 낙산부부와의 첫 만남이 어제 일처럼 새롭다. 낙산부부를 처음 만난 지는 10년 가까이 된다. 내가 광교산 입구 식당 앞에서 어슬렁어슬렁 무료함을 달래고 있을 때 산행 길에 나섰던 낙산부부가 말을 건네 왔다. 첫눈에 나에게 호감을 느꼈겠지만 난 그닥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 온 낙산부부는 또다시 나에게 말을 붙이니 식당 아주머니는 길 잃은 나를 데려가도 좋다고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낙산부부는 마다하지 않고 꾀죄죄한 나를 얼른 데려갔다. 그날이 2005년 9월 9일이다. 

사실 나는 붙임성 좋고 장난기가 많은 편이다. 낙산부부는 나를 마트에서 얻은 까만 비닐봉지에 넣어 버스 타고, 병원에서 건강진단 및 각종 예방주사를 맞혔다. 원장은 내 모습을 보고 귀엽고 아주 잘 생겼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원장은 낙산부부에게 일러준다. 수컷 말티즈인데 중성화 수술을 했고 대략 두 살이라며, 진찰카드를 만들었다. 덕분에 기억에도 없던 내 생일은 2003년 9월 1일로 기재되었다. 
그리고 성함은? 낙산선생은 마침 오늘이 9월 9일, 쌍구 날인 것을 떠올려 즉석에서 내 이름을 '짱구'라 짓자, 원장은 즉각 진찰카드에 올렸다. 2차 예방주사 맞을 때 털 손질까지 마치니 산뜻한 차림새가 되었다. 처음 몸무게는 3.2kg 이었지만 식성이 좋은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살이 통통해졌다.  

낙산(駱山)부부에게 고함_1
머리털 다듬은 '짱구'

내 성격은 긍정적이다. 즐겁게 지낸다. 물론 낙산부부가 마음 편하게 대해 주기 때문이다. 대소변은 낙산부부에게 폐 안 끼치게 화장실에 놓인 신문지에 처리한다. 말을 건네면 아직 인간 언어에 익숙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거릴 때가 많다. 물론 낙산선생은 그런 내 모습이 귀여운 지, 나 골 때리는 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말을 붙인다. 그러면 살짝 눈동자만 돌리기도 한다. 나는 낙산선생처럼 앞발과 뒤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옆으로 누워 자기도 하고 코를 골기도 한다. 살짝 건드리면 발딱 옆구리를 돌려 잔다. 때로는 방귀도 뀐다. 하지만 낙산부부 목소리가 여느 때와 다르면 눈치 빠르게 사라져야 한다. 

낙산선생은 막걸리를 즐긴다. 배달한 통닭을 안주삼기도 한다. 내가 기웃기웃하면 한 조각 줄 생각은 안하고 술잔만 코앞에 들이댄다. 질색이다. 낙산선생의 악취미다. 하지만 잠깐만 참으면 된다. 마음 약한 낙산선생이 사모님 몰래 한 조각 건네주기 때문이다. 때로 낙산선생이 간식을 들고 있으면 뒷발로만 서서 다가가다가 뒷걸음질하기도 한다. 

낙산선생이 목줄을 꺼내들면 나는 기쁘다. 꼬리를 흔들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리고 컹컹 크고 짧게 소리친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공원 산책에 나서기 때문이다. 낙산선생은 고저강약에 따른 내 목청소리 의미를 알아듣는다고 아는 체 한다. 산책길에 목줄을 풀어주면 한껏 내달리면서도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즐거움을 만끽한다. 그러다가 영역 표시할 때면 왼 뒷발을 들기도 하고 오른 뒷발을 들기도 한다. 양발 잡이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숲에 마구 뒹굴러 진드기를 옮겨와 병원에 가기도 했다. 낙산선생이 투덜거린다. 

귀가시간이 되어 낙산선생이 목줄을 흔들면 큰 소리 나오기 전에 고개 숙여 목을 들이대어야 한다. 남의 속도 모르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기하듯 말한다. '아니, 목줄을 매라고 지레 다가가네.' 동료를 만났을 때 냄새가 마음에 안 들면 앞뒤 가리지 않고 컹컹 큰소리친다. 그러지 말라고 낙산선생이 나무란다. 한번은 송아지만한 진돗개에 덤벼들다가 목덜미를 물려 외과수술을 한 적도 있다. 낙산선생이 목줄을 풀어놓았기에 상처가 컸다.   

동네 어린이들과 어울리려 몰래 가출도 했다. 여학생은 귀엽다고 나를 데려갔다가 목에 걸린 이름표를 보고 질겁해서 낙산선생에게 연락하고, 어느 아주머니는 혼자 사색하는 나를 관리사무소에 맡기기도 하고, 가관인 것은 경비원이 조깅하는 나를 끌고 애꿎게 집에 데려온 경우도 있다. 한번은 말없이 이웃 어린이를 따라갔다가 낙산부부에게 혼 난 적도 있다. 덕분에 낙산선생은 괜한 아이스크림, 술, 과일 등을 사례로 보냈다. 

낙산부부 발소리는 멀리서도 알 수 있어 자연히 문 앞에서 기다리게 된다. 문을 열어 본 낙산부부는 내가 문 앞에 와 있는 것을 신기해한다. 나는 낙산부부가 몰래 외식하고 오면 흐뭇하다. 일단 평소와 다름없이 꼬리가 떨어지라 반갑게 맞이하고는 빨리 내놓으라고 '끄으웅 끄으웅' 주절댄다. 물론 측은한 표정도 함께 하여야 한다. 당연히 특식 비닐봉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후각능력이 인간보다 최고 1억 배 정도, 청각능력은 '소머즈' 급으로 인간보다 8배 정도 발달했기 때문이다. 낙산부부가 훌쩍 여행을 떠나면 혼자 남은 나는 입맛을 잃는다. 결국 스트레스는 대소변을 생각나는 대로 뿌리는 것으로 해결한다. 생각 없는 낙산부부는 이를 보고 혀를 찬다. 

다행히 친구가 생겼다. 나보다 1년 늦게 들어온 고양이 러시안 블루 '바스'. 그 녀석하고는 한동안 밥그릇도 함께 사용했었다. 3년 전부터 함께한 하얀 오드아이 고양이 '까미'. 막내로 장난꾸러기인지라 '바스'를 무척이나 귀찮게 했다. 장난을 이해하는 나와는 아주 친밀하게 지냈다. 다 수컷이다. 물론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지만 통역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낙산(駱山)부부에게 고함_2
까미

이참에 낙산부부, 아니 인간에게 한 마디 하여야겠다. 인간은 우리 동족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껴야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체격이 훨씬 컸던 네안데르탈인과 1만 년 동안 공존하다가 도태되지 않고 지구상에 존재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우리들과 친숙했기 때문이다. 즉 우리를 파트너로 하여 사냥능력의 차이를 크게 벌렸기 때문이다. 
우리들이야 진즉 그렇게 생각해 왔지만 인간들이야 어디 그 공을 알기나 하나? 다행히 최근 팻 쉽먼(Pat Shipman) 교수가 이런 내용의 논문을 썼기에 알려 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들을 가족화(가족화는 우리들 이야기이고 인간들은 가축화 하였다고 자랑한다)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인간의 특성을 변화시켰다. 침팬지의 흰자위는 검은색에 가깝다. 인간은 흰색이다. 그런 변이가 일어나게 된 원동력이 바로 우리다. 흰자위가 하야면 시선의 방향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사냥터에 나선 우리들은 흰자위를 지니게 된 인간과 시선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으며 효율적인 사냥이 가능하다. 더구나 우리들은 눈치가 99단이다. 실제로 우리들과 인간, 특히 아기들은 눈이 향한 방향으로 시선이 향하지만 침팬지 시선은 머리를 돌린 방향을 따라간다. 

건강하던 나는 몇 년 전부터 분홍빛 피부에 검버섯, 사마귀가 생기고 까만 콧잔등은 검붉은 색으로 얼룩졌다. 뒷다리 탈골이 일어나 소파에 오르고 내리기도 조심스럽고 백내장 증상도 왔다. 다행히 지병인 기관지염의 캑캑대는 증상은 잠잠해졌고 입맛은 아직 여전했다. 
그러다가 지난 해 연말 이사 온 후에는 몸동작이 느려져 움직이기가 싫고 또한 낯선 곳에서 겨울을 지내려니 절로 스트레스도 왔다. 얼마 전 부터는 나도 모르게 소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통닭 먹기도 힘들어 낙산선생이 입에 대 주면 체면상 억지로 먹었다. 택배 아저씨가 불쑥 들어와도 큰소리치기 힘들다. 

어제는 시야가 가린다고 낙산선생이 내 머리털을 다듬는다. 나는 머리 깎는 것은 질색이다. 꼼짝 않고 있어야하고 다 깎으면 목욕도 하여야 한다. 목욕하기는 더더욱 싫다. 그런데 도저히 앙탈을 부릴 기력이 없다. 낙산선생은 다소 의아해 하였지만 아무런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다행이다. 저녁밥도 당기지 않았다. 

벌써 날이 밝아 온다. 이제는 지난 기억을 불러올 정신도 없다. 눈앞이 어리어리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슬프더라도 작별할 때가 왔나 보다. 그동안 나를 보살펴주고 귀여워 해준 낙산부부. 감사합니다. 그리고 '바스'.  

오늘 아침. 앞발과 뒷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옆으로 누워있는 짱구 모습에 가슴이 덜컥했다. 설 3일전 아침이었다. 눈은 감고 있어도 몸뚱이는 따뜻했다. '짱구'는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늘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애썼다. 항상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무릎에 안기려 하고 이따금씩 얼굴을 핥아대기도 했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경계 신호를 보냈다. '짱구'는 개가 얼마나 생각이 깊고 친근하며 유용한 동물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 베푼 가장 큰 선물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떠났다. 

낙산(駱山)부부에게 고함_3
큰형 '짱구'는 어디로 갔을까?

텅 빈 '짱구' 집을 '까미'가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오후 늦게 가출한 '까미'는 상처투성이인 몸으로 3일 만에 돌아왔다. 설 연휴임에 수소문 끝에 목 주위, 뒷다리 등 네 곳을 꿰맸다. 일주일 후 상처가 아물기 전 또다시 가출하여 소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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