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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좀 살자구요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5-11-03 17:13:20최종 업데이트 : 2015-11-03 17:13:20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봄부터 우리 집에 하얀 새끼 고양이가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러시안 블루 고양이 사료를 맛보더니 입맛에 맞는 지 계속 드나들었다. 물론 사료처럼 주인도 제 입맛에 맞으려니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럭저럭 몇 개월이 흐르자 아주 건강하게 자랐다. 

이제는 낮잠 정도는 마당 한 구석 제 입맛에 맞는 곳에서 늘어지게 잔다. 그러다가 저녁이면 어디론지 나가 새벽에 돌아온다. 대소변은 외출 중 어디선가에 처리하여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가끔 이웃집에서 자기 집 화분에 하얀 고양이가 대변을 처리한다고 항의한다. 이때는 정중하게 '우리가 기르는 고양이가 아닙니다. 단지 우리 집에 들락거리는 길고양이어서 사료를 줄 뿐입니다'.  

우리도 좀 살자구요_1
고양이 '뻔'

이름은 '뻔'이다. 하도 뻔뻔하게 제 집처럼 들락거리면서 러시안 블루의 사료를 같이 먹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제는 나와도 안면이 터서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면 꽁무니를 쫒아 다니고 손발에 얼굴을 비벼대며 스킨십을 한다. 밥그릇소리가 나면 어디선지 슬그머니 나타난다. 대문을 나서면 몰래 뒤쫓아 오기도 한다. 

길고양이가 주인(?)을 뒤쫓는다니? 느낌이 이상해서 뒤돌아보면 재빨리 주위의 자동차 밑으로 숨는다. 관심을 끊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대문 근처에 오면 몰래 근처에서 살펴보다가 재빨리 내 앞을 지나 이웃집 담장 위로 올라가 나를 빤히 내려다본다. 친구쯤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가끔 자고 있는 놈 앞에서 '뻔'!하고 부르면 '냐옹' 답변이 온다. '뻔'! '냐옹', '뻔'! '냐옹'. 그러다가 귀찮으면 '뻔'! '냐아~옹' 답변이 길게 나온다. 이제 그만하자는 신호다.

언젠가 아침 현관 계단에 죽은 쥐가 한 마리 놓여 있다. '뻔'이 잡아온 것이다. 며칠 후 또 한 마리를 같은 장소에 잡아 놓았다. 제 딴에는 나도 밥값은 한다는 은연 중 시위다. 곱등이가 방에 들어와 마당에 던져놓자, 다음 날 아침 곱등이까지 잡아와 계단에 올려놓았다. 

우리 집에는 하얀 고양이 외에 다른 길고양이들도 들락거렸다. 하지만 이미 러시안 블루의 영역인 이상 이들 검은 놈, 노란 놈, 얼룩이 등 길고양이 셋은 발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이사 온 후 얼마간 러시안 블루는 이들 길고양이를 쫓아내느라 낮에는 물론 특히 야밤에 으르렁 으르렁 내는 소리에 이웃에 미안할 정도였다. 그런데 하얀 '뻔'과는 돈독한 관계가 유지되었다. 

동네 골목마다 길고양이가 많다. 길고양이가 처음부터 많을 리는 없을 테고, 기르던 고양이가 가출, 유기 등으로 자체 번식하여 길고양이가 될 가능성이 많다. 길고양이 수명은 병원균 감염, 염분 과다섭취 등으로 고작 1년 정도다. 울음소리와 쓰레기봉투를 긁어 헤집는 습성 등 때문에 주민들 감정이 좋지 없다. 하지만 길고양이를 좋아해 먹이를 주고 보살피는 '캣맘'들도 있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서교동 지역에선 주민들 간 분쟁으로 길고양이  학대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편 길고양이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던 서울 강동구가 이른바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해 관내 길고양이를 둘러싼 갈등은 상당 부분 줄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은 1911년 동물보호법을 세계 최초로 제정하였다. 유럽연합은 동물에게 '다섯 가지 자유'를 보장한다. 기아·갈증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상처·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활동을 할 자유, 공포·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등이다. 
산책시키지 않는 등의 행위도 법적으로 제재를 받는다는 얘기다. 미국의 경우 1970년 '동물 복지법'을, 일본은 1973년 '동물보호 관리법'을 제정했다. 독일의 경우 1990년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문을 민법에 명시했다. 

우리나라는 1991년 동물에 대한 학대행위 방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보호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길고양이로 인한 주민 간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캣맘'들은 길고양이도 하나의 생명이며 인간 사회와 공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따라 '뻔'의 표정이 진지하다. '우리도 좀 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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