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화성에 펄럭이는 깃발과 장용영
최형국/역사학박사, 수원시립공연단 상임연출
2015-11-13 12:57:24최종 업데이트 : 2015-11-13 12:57:24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수원 화성(華城)을 따라 돌다보면 성벽 사이로 다양한 색깔의 깃발들이 펄럭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각 구간별로 색깔이 전혀 다른 것이 배치된 것을 한번 즈음 궁금해 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주변에는 붉은색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고, 그 반대편에 있는 북문인 장안문에는 온통 검은색의 깃발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동문인 창룡문으로 가면 푸른색의 깃발이 가득하고 서문인 화서문쪽에는 흰색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여기에는 사방을 상징하는 색깔인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남주작(南朱雀), 북현무(北玄武)라고 하는 전통적인 방위 색을 깃발에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 화성행궁은 화성의 요충지이기에 중앙을 상징하는 황색의 황룡으로 오방색을 채우게 된다. 그리고 그 깃발의 색깔에 따라 부대가 구분되었으며 각각의 사대문과 화성행궁을 중심으로 포진하여 배치하였다. 그런데 수원화성에는 각각의 방위를 지키는 부대의 명칭이 조금은 달랐다. 

예를 들면, 북문은 장안위(長安衛), 남문은 팔달위(八達衛), 동문은 창룡위(蒼龍衛), 서문은 화서위(華西衛), 마지막으로 화성행궁은 정문의 이름을 따라서 신풍위(新豊衛)라 이름 붙였다. 이 공간에 모두 3천175명의 정병이 골고루 나눠서 화성을 지켜냈다. 특히 전쟁이 발생하거나 내란으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수원 주변의 인근 고을의 군사들이 화성의 사대문과 화성행궁 방어를 위해 즉시 달려오게 되어 있었다. 
이를 협수군(協守軍)이라고 불렀는데, 일종의 지역 방어군 성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장안문에는 시흥현령, 팔달문에는 진위현령, 화서문에는 안산군수, 창룡문에는 용인현령, 신풍루에는 과천현감이 소속 군사들을 이끌고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이들의 전체 숫자는 1만6천122명으로 유사시 화성을 방어했던 총 군사인원은 모두 2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엄청난 군세를 확보하고 있었다.

화성에 펄럭이는 깃발과 장용영_1
화성능행도 중 노량주교도섭도(鷺梁舟橋渡涉圖):1795년 윤2월 16일 화성행행의 마지막 날 서울 남쪽의 한강 노량진(鷺梁津)을 지나 창덕궁으로 환궁하는 모습이다. 한강은 강의 폭이 600m 가량으로 너무 넓기 때문에, 현대적인 교량 건설 기술이 존재하지 않던 당시에는 교량을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해서 여러 척의 배를 연결하여 부교를 설치해야만 했다. 주교의 좌우로는 각각의 부대를 상징하는 다양한 인기와 고초기를 배치하여 국왕의 위엄을 세웠다. 군사훈련시에

바로 이들을 지휘할 때 사용했던 것이 그 다양한 색깔의 깃발들이었다. 당시 사용했던 깃발은 지금처럼 성벽에 열을 지어 서 있던 것이 아니라, 각각의 군사들 중 깃발을 전문적으로 운용했던 기수들이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사용한 군영에서 사용한 깃발은 군기(軍旗)라 하여 각 부대장의 소속과 지위를 구분하였는데, 이를 통하여 휘하 장수들에게 명령하고 혹은 상부의 지시에 복명을 표현할 때 사용한 것이다. 깃발을 사용하는 법을 조금만 알면 화성에 펄럭이고 있는 깃발들이 색다르게 보일 것이다. 

깃발로 신호를 할 때에는 보통 응(應) - 응답, 점(點) - 깃발을 지면에 대지 않고 다시 일으켜 세움, 지(指) - 깃발을 지면에 대었다가 다시 일으켜 세움, 휘(揮) - 깃발을 크게 휘두름, 보(報) - 보고 등의 신호를 나타낼 수 있었다. 수원 화성의 사대문과 핵심 방어지역에는 인기(認旗)라는 깃발이 사용되었는데, 현재 화성의 사대문의 성벽 위에 펄럭이는 큰 깃발이 바로 그것이다. 

장수 인기의 움직임에 따라 휘하 장교들은 소집 및 해제의 신호로 받아 들였다. 예를 들면 장수가 인기를 계속 휘두르면 파총(把摠)이하 모든 간부들까지 모두 장수 앞으로 달려 나아가 집합하여야 했다. 반대로 인기만을 사용하여 기대총(旗隊總)을 모두 소집해서 명령을 하달한 후 인기를 한번 휘두르면 각 부대의 지휘관들은 모두 흩어져서 원래의 대오로 돌아가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파총(把摠) 이하의 지휘관들도 자신의 인기를 이용하여 해당 명령을 전달하였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 깃발이었기에 신호체계에 활용하는 깃발을 담당하는 기수는 가장 전투력이 높은 군사를 따로 뽑아 활용하였다. 만약 깃발이 공격을 당해 부러지거나 적에게 빼앗기면 신호체계가 붕괴되어 아군이 전멸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도 있기 때문이었다. 
화성에 펄럭이는 깃발은 지금도 힘차게 역사를 말하고 있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