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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과 ‘은박지’와 ‘얼굴’
윤수천/동화작가
2016-06-19 15:47:41최종 업데이트 : 2016-06-19 15:47:4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공주에 사는 풀꽃의 시인 나태주 선생이 새 시집을 보내왔다. '꽃 장엄'. 1971년에 시인으로 등단한 이래 벌써 서른일곱 번째 시집이다. 시력 45년을 감안하더라도 참으로 엄청난 수확량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태주 시인은 체구도 큰 편이 아니지만 그가 다루는 시의 대상 또한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태반이다. 그의 대표작이자 이미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풀꽃'이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과 '은박지'와 '얼굴'_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대상도 작지만 글의 양도 얼마 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쓰다 만 시 같다. 하지만 그 울림은 그 어떤 시보다도 길고 그윽하다.

나태주 시인이 보여주는 '작은 시'를 생각하다 보니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은박지의 작가 이중섭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중섭 역시 '작은 그림'을 즐겨 그린 화가였다. 어려운 생활고에 대작을 그릴 형편이 안 된 탓도 있었지만, 어찌 보면 그는 작은 것에 더 관심을 가진 화가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중섭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황소'를 비롯해 '가족' '부부' '물고기와 노는 두 어린이' 등은 모두 작은 크기의 작품들이다. 여기에다 그림의 바탕 재료가 된 것들 역시 캔버스가 아닌 종이, 나무판대기, 은박지, 장판지였고 물감 역시 연필, 유채, 수채 등이었다. 

특히 그가 처했던 환경은 최악의 한가운데였다. 6.25라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을 이어가야만 했던 것. 그 절박감과 처절한 고독, 그리움을 꾹꾹 누르면서 그는 종이면 종이, 은박지면 은박지 등 가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쏟았다. 그의 예술혼이 돋보이는 것도 이런 올인 정신에 있었다고 봐진다.

마침 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는 전시회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어 그를 사랑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시회를 다녀온 한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서 느낀 것은요, 대작이 한두 점쯤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차를 타고 오면서 생각하니 그 작은 그림들이 작은 게 아니란 생각이 드는 거 있죠? 뭐랄까. 이중섭의 우주가 그 작은 그림 안에 온전히 들어 있다는 그런 생각 말이지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얼굴'이란 노래도 작은 사건(?)에서 탄생했다. 작곡가 신귀복은 중학교 음악교사였다. 1967년 3월 초, 그날따라 교무회의가 지루하게 진행되자 신귀복은 옆의 생물교사 심봉석에게 넌지시 제의를 했다. 작곡 제목을 '얼굴'로 정했으니 사귀는 애인을 생각하면서 가사를 지어 보라고. 이 제의를 받은 심봉석은 단숨에 가사를 지었고, 이 가사를 받은 신귀복은 그 자리에서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곡을 붙인 것, 그게 '얼굴'이다. 단 5분 만에 완성된 초 스피드급 가요 탄생이었던 것이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 따라 올라갔던 오색빛 하늘 아래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날으던 지난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머물다 가는 얼굴 

국민가요급 노래가 단 5분 만에 탄생했다면 거짓말이라고 할 사람이 있겠지만 이는 사실이다. '얼굴'은 무슨 거창한 사전 계획에 의해 써진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장난기 어린 예기(藝氣)가 번개처럼 만나 이루어 낸 조명탄 같은 것이었다. 
오늘도 이 노래를 부르면서 많은 이들이 잠시나마 고단한 삶을 잊고 저 어린 날의 동심으로 돌아가리라.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어 오리라. 이를 생각하면 풀잎처럼 맑은 가사에 아름다운 곡을 붙인 두 분에게 몇 번이고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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