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묘년(乙卯年), 정조의 수원 능행차 뒷이야기
최형국/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시범단 상임연출, 역사학박사
2016-07-01 15:25:03최종 업데이트 : 2016-07-01 15:25:03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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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1795년), 정조가 자신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엄청난 인원을 동원하여 진행한 을묘원행은 정조 자신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큰 의미있는 행사였다. 특히 억울하게 뒤주 속에서 세상을 떠난 정조의 생부인 사도세자 역시 혜경궁 홍씨와 동갑이었기에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수원 화성에서 펼치고자 준비했던 효(孝)의 행차이기도 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실린 신풍루사미도(新豊樓賜米圖)이다. 을묘년 능행차때 정조가 직접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에서 백성들에게 쌀을 하사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이처럼 을묘년의 수원 화성 능행은 왕실이 주도하고 국왕이 진두지휘한 국가 최고의 행사였지만, 백성의 살림살이를 먼저 살핀 위민(爲民)의 통치철학이 실천된 행사이기도 했다. 요즘도 적게는 수억에서 많게는 수백억 규모의 국책 사업이 전국적으로 펼쳐진다. 특히 9월과 10월의 대한민국은 마치 '축제 공화국'인양 전국 어디를 가도 흥겨운 축제가 매주 연속으로 이어진다. 그런 축제의 비용 역시 모두 국민들의 세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오로지 축제에 모든 비용을 쏟아 부을 것이 아니라, 그 중 일부를 공식적으로 시민을 위한 기금이나 헐벗고 굶주린 약자를 위한 종자돈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축제(祝祭)'는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공간이 아니라, 그 이름처럼 한 마음 한 뜻으로 무엇인가에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표하는 성스러운 시공간이기도 하다. 정조가 을묘년에 보여줬던 그 위민의 정신은 시대가 흘러도 결코 변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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