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슬픔을 개혁으로 풀어낸 군주
최형국/역사학박사,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시범단 상임연출
2016-10-23 09:39:42최종 업데이트 : 2016-10-23 09:39:4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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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삶은 비록 국왕이라는 특수한 존재였지만, 일반적인 우리네 삶에 비춰봤을 때 극도의 슬픔을 마주하며 일생을 보냈다. 대한민국 거의 모든 국민이 알고 있듯이,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스물여덟이라는 피 끓는 청춘에 뒤주에 갇혀 죽음을 당하였다. 그런 광경을 어린 정조는 11살, 요즘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 정도에 겪어야 했고, 이후 26살에 국왕에 오르기까지 말 그대로 피 말리는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아비의 죽음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 조정에 가득했으니, 그가 왕위에 오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임오화변(壬午禍變), 1762년 임오년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도세자의 죽음은 어린 정조 아니 국왕 정조의 모든 것을 바꾸기에 충분한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화성의 핵심 방어시설이자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불리는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의 야경이다. 정조는 슬픔을 딛고 일어기 위해 화성을 쌓았고, 그곳에 백성들과 함께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다행히 정조의 다섯 번째 부인인 수빈 박씨와 1787년 2월 가례를 올리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조선 제일의 명당으로 불렸던 수원 화산(花山)으로 옮긴 후 1790년 6월 18일 순조가 탄생하게 되었다. 정조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가장 슬프게 이별을 하였다. 그 연이은 죽음과 맞닥뜨리면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조선을 꿈꿨기에 18세기 조선은 풍요로울 수 있었다. 가슴에 돋는 슬픔을 베어내고 조선을 개혁으로 이끈 군주, 정조의 마음은 지금도 수원 화성에 고이 남아 있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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