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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곳(太古)적 여인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7-02-17 12:50:55최종 업데이트 : 2017-02-17 12:50:5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돌멩이는 작은 돌을 일컫는 말이다. 사전에 보면 자갈보다 크고 돌덩이보다 작다. 돌덩이는 바위보다 작은 돌이다. 자갈은 강이나 바다에서 오랫동안 갈리고 씻겨 반질반질하게 된 잔돌로, 크기에 의한 분류는 전문분야별 차이가 있다. 
국제토양학회에서는 지름 2㎜이상으로 통용되며, 자연지리학적으로는 5㎜이상의 것을 자갈이라 한다. 환경공학적으로는 소자갈(18~36㎜), 중자갈(36~76㎜), 대자갈(76㎜이상)로 분류되어 골재 등에 이용된다. 다만 조약돌은 작고 동글동글한 돌이다.

고교시절 어느 날 생물선생이 한강 지류 어류조사 가자고 학생들을 부추겼다. 김포 지역이었던 것 같았는데, 야트막한 개울에 쳐놓은 그물에는 물고기 몇 마리만 눈에 띌 뿐이다. 그나마 나는 물고기엔 신경 안 쓰고 물속 돌멩이에 관심을 두었다. 
돌멩이는 자갈보다 크다고 하지만 5㎝이상은 되어야 무언가 느낌이 온다. 그때부터 하나 둘 돌멩이를 주어다가 집안 구석에 모아 두니 부모님은 자식 놈이 괴상한 취미(?)를 갖나보다 하는 눈치였다. 입대해서는 서해안초소에 근무하게 되어 시간만 나면 바닷가를 두리번거렸다. 

어느 날 어머니는 이를 이재(理財)의 눈으로 보시고 '옛날 어느 머슴이 돌멩이를 주어다가 마당에 잔뜩 모아두어 동네 사람들의 핀잔을 받더니, 나중에 보니 그것이 모두 금덩이더라. 행여 저게 금덩이일까?' 아버지는 한 수 위 이셨다. '돌멩이는 구멍이 뚫려 있어야 제 멋이다'. 북송시대 문인 미원장(米元章)의 돌(石)의 4원칙 중 투(透)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그 시절 한강 지류에서 팔등신 여인이 양각된 돌멩이 한 개를 얻었다. 밀로의 '비너스'다. 혹시 낯모른 아주머니의 여동생이런가? 어느 날 하굣길. 비 쫄딱 맞으며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 누군가 뒤에서 우산을 씌워준다. 며칠 후 어머니는 '지난 번 비 오는 날 우산 씌워준 동네 분 생각나니?' '.....?' '여동생 있단다.' 

태곳(太古)적 여인 _1
비너스(봄처녀)

어쩌면 들나물 캐며 남자 마음을 졸이게 한 채갈(采葛)의 '봄처녀' 일는지 모른다. 칡 캐는 저 아가씨, 하루를 안 보아도 석 달은 된 것 같아라(彼采葛兮 一日不見 如三月兮). 대쑥 캐는 저 아가씨, 하루를 안 보아도 아홉 달은 지난 것 같아라(彼采蕭兮 一日不見 如三秋兮). 뜸쑥 캐는 저 아가씨, 하루를 안 보아도 삼년은 흐른 것 같아라(彼采艾兮 一日不見 如三歲兮). 

한편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서 얻은 돌멩이 '노모침선(老母針線)'은 이야기보따리다. 그림은 뚜렷하지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쪽진 머리에 은비녀 꼽은, 늦은 밤 뚫어진 양말에 전구 끼고 허리 굽혀, 침침한 눈으로 양말 깁던 어머니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어머니에 대한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태곳(太古)적 여인 _2
노모침선(老母針線)

절제되고 간결한 문체로 탁월한 경지를 이룬 수필가 윤오영은 그의 수필 '조약돌'에서 어릴 적 조약돌이 좋아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일이 생각나노라 하고, 언제부터인가 머리맡의 조약돌을 심심하면 주무르는 버릇이 들었고, 가슴이 울컥하다가도 이 돌을 주무르면 사르르 가라앉기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돌에다 보이지 않는 약물로 비문 한 줄 써 놓고 바닷가 조약돌 틈에 던져두고 가리라. 그러면 오랜 세월이 지나 이 돌의 비문 자리가 나타나 어느 도사가 주워 갈지도 모른다고. 

혹시 내가 주워 온 돌멩이도 먼 옛날 어느 여인네가 자신의 모습을 그려 물가에 던져놓고 스스로 후세에 전해지기를 기약했는지 모른다. 챙겨야 할 남정네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만고의 세월이 흘러 그림 자리가 나타나 기꺼이 백두옹(白頭翁) 눈에 띄었으리라. 

비너스, 아니 치맛자락 펄럭이며 사뿐사뿐 발을 내딛는 봄처녀를 보노라면 여전히 마음이 철렁하고 와인 생각 절로 난다. 그리고 '노모침선'을 멍하니 들여다보면 어느새 부모님 추억이 떠오르고 마음은 한결 잔잔해진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아침밥 먹으라는 소리, 점심 먹으라는 소리 들으면서 하루 종일 잠만 잤을 때, 어머니의 두둔하던 말씀도 떠오른다. '저 녀석, 소대생인가?' 그때는 소대생이 누구인지 몰랐고, 후에 어느 월간지에 수록된 '소대성전'을 읽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내 곁에는 태곳(太古)적 여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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