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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파가 참 예쁘네요"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7-10-09 12:15:57최종 업데이트 : 2017-10-09 12:14:36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기자
일찍이 플라톤은 관념적이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대하여 적당한 척도와 비례를 유지하는 대상은 아름답고 그것이 결여되면 추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개념은 멀리 피타고라스에게까지 소급될 수 있다. 미를 상당히 수학적인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는 셈이다. 비너스 등 그리스 조각에 있어서의 신체 비율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이처럼 '미는 곧 비례다'라는 개념은 서구 문화에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인식되어 왔다. 이에 반해서 근대 미학에서는 '미적인 것'을 대상으로 한다. 이 '미적인 것'은 이념으로서 추구되는 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들 마음속에 비쳐지는 미이다.

○○마트 지하매장. 반찬 판매대 앞을 기웃거리니 판매원 아주머니가 파김치를 가리키며 한마디 한다.
"오늘 파가 참 예쁘네요, 사가세요"
귀가 번쩍 뜨인다. 아니, 파가 예쁘다니? 호기심에 건성으로 되묻는다.
"어떻게 예쁜데요?"
"보세요, 머리가 아주 예쁘잖아요, 가지런히 놓인 것이, 오늘 것이 제일 예뻐요."

재래시장 골목에 놓인 바구니 안의 쪽파들, 다듬어놓아 하얗고 초록잎이 예쁘다.

다듬어놓은 쪽파 한단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낀다.



김흥수 화백의 하모니즘, 박초월의 우렁찬 춘향가, 김정희의 힘찬 추사체도 아닌 판매대에 놓인 파에서? 하찮은(?)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끼다니, 새삼 투박하고 조그만 옹기단지가 예쁘다고 부뚜막에 놓고 보시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파(蔥)는 백합과(科) 파속(屬)에 속하는 식물로, 동양에서는 예부터 중요한 채소로 재배하였으나 서양에서는 거의 재배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적어도 통일신라시대에는 재배하였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같은 파속에는 양파, 부추, 염교, 마늘, 달래 등이 있다. 쪽파는 파와 양파의 교배종이다. 파는 유황을 함유하여 독특한 냄새가 나며 비타민 A, B2, C, D, E를 비롯하여 양질의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소화를 돕고 땀을 잘 나게 하며 감기에 효력이 있고 항암 효과가 큰 채소다.

가포육영(家圃六詠)에 보면 파(蔥)는 '고운 손인 냥 가지런히 모여 수북하게 많고 아이들은 불어대는 호드기를 만드네. 술자리에 안주 구실 뿐 아니라 비린 국에 썰어 넣으면 더욱 맛나네'라 하여 아이들의 노리개로, 안주로, 특히 고기와 생선 냄새를 없애는 조미채소로 쓰여 왔음을 알 수 있다. 나도 파 호드기를 불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파를 싫어했던 내게 어머니는 부엌 아궁이 불에 숨죽인 파 잎대로 풀피리 내는 법을 보여주셨다.

또한 파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라' 하듯, '집자지수(執子之手) 여자해로(與子偕老)', 해로동혈(偕老同穴)을 의미하기도 한다.

파 한 뿌리는 영혼을 구원할 수도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그루센카'는 말한다. "옛날에 아주 심보 고약한 노파가 죽어 불바다에 떨어지니, 노파는 하늘에 구제해 달라고 빌었다. '살아생전 한 가지라도 좋은 일을 하였다면 용서해주마'. 노파는 파 한 뿌리를 거지에게 적선한 것을 기억해 냈다. 파 한 뿌리가 내려왔다. 노파는 파를 잡고 불바다를 탈출하려 하자 다른 죄인들이 노파의 발목을 잡고 매달렸다. 그러자 노파가 '놓아라. 너희들 때문에 내가 못 올라가겠다'라며 발버둥 치자 파가 두 동강 났다"

판매대 아주머니의 한 마디 말처럼 머리가 예쁜 파. 백년해로(百年偕老)의 상징이요, 우리 식생활의 활력소인 파. 못돼 먹은 영혼도 한 번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파 한 뿌리. 그런데 엉뚱하게 고색동 파전을 떠올리기는. 참.★

멋진 자태를 뽐내는 어머니의 옹기단지

멋진 자태를 뽐내는 어머니의 옹기단지


 

, 김재철, 카라마조프, 백년해로, 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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