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귀신'. 조선총독부가 식민지정책의 일환으로 조사 연구한 결과를 정리하여 1929년에 간행한 것을, 근래 우리나라에서 번역한 책이다. 어머니는 당사자가 미리 알아차리면 부적 효험이 떨어진다고 하셨다. 어릴 적 한 밤중 더듬더듬 화장실에 가보니 푸른 불빛이 보여 놀란 적이 있었다. 촛불을 켰다 껐다 확인해보니 한쪽 구석의 북어대가리에서 불빛이 나온다. 북어대가리는 어머니가 삼신할머니에게 고사(告祀)를 지내고 화장실에 던져 놓은 것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북어대가리 눈알의 인(燐)성분이 스스로 분해하여 푸른빛을 내는 것이다. 어머니는 눈알이 있는 온전한 북어만을 골라 고사에 사용했다. 싸리나무로 엮은 북어 한 쾌(20마리)를 사다 놓으면, 북어 눈알을 좋아했던 나는 열쇠를 이용하여 그때그때 다 뽑아 먹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내 속옷에 몰래 부적을 붙여 주셨다. 몇 번이나 접은 작은 부적을 조그만 무명 주머니에 넣어 속옷에 꿰맨 것이다. 입대할 때에도 몰래 붙여놓아 훈련받을 때에야 겨우 눈치 차릴 정도였다. 어머니는 당사자가 미리 알아차리면 부적 효험이 떨어진다고 하셨다. 나는 군 복무기간 소총소대 경비분대장으로 근무했다. 그러니까 저녁때만 되면 소대본부를 떠나 주어진 경비구역에서 야간근무를 하고 아침이면 소대본부로 철수 했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과였다. 야간근무는 몹시 무료했다. 어느 날 밤, 생각해보니 소대본부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고추밭이 있는 것이 문득 생각났다. 밤새 야간근무를 하고 입이 텁텁하고 입맛이 없을 때 풋고추는 그야말로 군대 짬밥 아침식사에 둘도 없는 성찬이었다. 그날은 달도 안 뜬 칠흑 같은 밤이었다. 나는 야간 근무 중 잠시 초소를 이탈했다. 그리고는 소대본부 근처 고추밭으로 몰래 스며들어갔다. 플래시를 비추면서 한 개 한 개 확인하여 풋고추를 따서 방독면 케이스에 집어넣었다. 분대원의 엄청난 식욕을 생각하니 마음마저 푸짐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고추밭에서 바라다 보이는 소대본부 막사에서 누군가가 플래시를 번쩍이면서 어둠 속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근무지를 이탈한 것을 눈치 챘나?' 막사에서 나온 대원은 플래시를 한곳에 고정시키면서 막사 주위에 잠시 서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이 놓인 나는 계속 고추 수확작업을 했다. 그때였다. 대원이 고추밭쪽으로 플래시를 번쩍였다. '아뿔싸 드디어 눈치 챘나 보다.' 나는 얼른 플래시를 껐고 낮은 포복으로 납작 엎드렸다. 대원의 플래시 불빛이 이곳저곳을 비치었다. 나는 소대본부 쪽에 바짝 신경을 쓰면서 대원의 플래시가 꺼지기를 기다렸다. 도깨비가 사라지던 날-1971.1.16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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