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의기(義妓) 김향화를 추억함
최정용/시인, 에코마린뉴스 대표기자
2016-03-04 07:05:32최종 업데이트 : 2016-03-04 07:05:3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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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다. 의기 김향화 또 일제가 공창(公娼)제도를 확장하면서 제일 먼저 실시한 것이 기생들에 대한 정기적인 성병(性病)검사다. 기예를 자랑하던 기생들을 일개 매춘부로 취급한 것이니, 오호통제(嗚呼痛哉)라 . 이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조선에 건넨 치욕이었다. 기생들의 고귀한 존재성을 무시하고 기생들을 자신이 사랑한 애첩, 게이샤(藝者) 수준으로 전락시키려고 했으니 일제의 식민통제책의 본질 가운데 하나다. 이를 꿰뚫어 본 수원 기생들의 '의(義)로 일어난(起)' 것은 당연하고 또 당연하다. 수원지역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 자혜의원 앞에서 수원예기조합의 모든 기생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또 하나의 의미는 이렇다. 당시 자혜의원 앞에는 일제의 수원경찰서가 있었다. 실제로 기생들을 통제하고 단속하던 곳. 가장 위협적 일제의 통치수단인 경찰서 앞에서 만세를 부르던 기생들의 대담함은 민족적 의기가 충만했다는 또 다른 증거다. 기생들은 일제 경찰에 의해 곧바로 체포됐지만 이후 시장 상인들은 철시(撤市) 투쟁을 벌이는 한편 노동자와 상인, 청년 학생들이 하나가 돼 일본인 상점과 관공서에 돌을 던지며 건물을 파괴하고 격렬한 항쟁을 벌였다. 기생들의 의거(義擧)가 수원 만세운동의 도화선이었다는 또 다른 증거다. '2016년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맞아 사적 제478호인 화성행궁 서면, 아직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김향화를 비롯한 기생들의 절규가 생생하다. 어찌 잊겠는가.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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