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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 속의 행복
윤수천/동화작가
2017-03-04 10:34:16최종 업데이트 : 2017-03-04 10:34:1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프로야구 두산 투수 유희관은 시속 130km대에 머무는 느린 볼로 타자들을 상대한다. 시속 130km대라면 투수의 공으로는 느려도 보통 느린 게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느린 공으로 지난해엔 무려 18승을 거두는 쾌거를 이루었다. 여기에다 569개의 아웃카운터도 잡아 윤성환(582개)에 이어 2위 자리를 차지했다.

'느림의 미학'으로 불리는 유희관 투수. 그런데 유희관도 한때는 빠른 공을 던지려고 애썼던 선수였다는 것이다. 하긴 투수치고 빠른 공을 던지려고 하지 않은 선수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상무 시절 만난 박치왕이란 감독은 유희관을 부르더니 이렇게 말하더란다. "쓸데없이 더 빨리 던지려고 애쓰지 말고, 네가 잘하는 걸 더 잘하도록 신경 쓰라"고.

감독의 그 조언에 유희관은 생각했단다. 내가 잘하는 게 뭔가. 그러다 보니 강속구보다는 '제구'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마음먹은 대로 던질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만은 그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다. 여기에다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심리적 요인까지 터득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되더란다.

기회는 언젠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제대 후 무명이었던 2013년, 두산 구단이 중요하게 여기는 경기인 LG와의 어린이날 잠실더비에서 투수로 나서기로 된 외국인 투수 니퍼트가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기는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였고, 유희관은 그를 대신해 경기에 나서게 됐다는 것. 일테면 '땜빵' 선발이었다. 그날, 니퍼트가 던지는 시속 155km짜리 대신 130km대의 느린 볼로 그는 실점 없이 1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타이밍과 제구라는 자신만의 무기를 갈고 닦은 결과였던 것이다.

현대생활 속에서 느림은 환영받지 못하는 것 중 하나다. 이에 반해 '빠름'은 어느 분야에서든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그만큼 현대는 속도를 무기로 삼는다는 얘기다. 뭐든 빠르지 않으면 경쟁력도 없다. 누가 알아봐 주지도 않는다. 그게 현실이다.

그런데 느림으로 자기 세계를 구축한 사람이 있다. 바로 소리꾼 장사익이다. 다들 들어봤겠지만 장사익의 노래는 템포가 상당히 느리다. 만약 그의 노래가 빠른 템포였다면 그 특유의 음색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저 뼈 속까지 울리는 한국민의 한恨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음식은 또 어떤가. 패스트푸드라면 기를 쓰고 덤비던 쪽에서 언제부턴가 슬로우 푸트가  점차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좋은 예가 오랜 시간과 숙성이 필요한 된장이 될 것이다. 된장은 한때 그 특유의 냄새 때문에 젊은 층들이 기피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였으나 건강식의 하나로, 특히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탁월하다고 알려지면서 너도나도 즐겨 찾는 음식이 되었다.

어디 음식뿐인가. 최근 들어 느림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고 있는 것 중 하나로 슬로시티(Slow City)가 있다. 슬로시티는 범지구적인 운동으로 1999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공식 명칭은 치타슬로(Cittaslow)이다. 슬로시티는 '느리게 살기 미학'을 추구하는 도시를 가리킨다. 빠른 속도와 생산성만을 강요하는 빠른 사회에서 벗어나 자연환경과 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여유 있고 즐겁게 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2010년 현재 20개국 132개 도시가 솔로시티 국제연맹에 가입돼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전남 담양군 청평면과 장흥군 유치면 등 4개 도시가 이에 가입돼 있다. 이 슬로시티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느림 속의 행복_1
사진/김우영

산을 좋아하는 내 친구 H는 등산 때 맨 뒤에 쳐져서 올라간다. 그래서 남들과 함께 가지 못하고 혼자 떨어져 간다. 결코 체력이 모자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냥 천천히 올라가는 게 즐겁단다. 산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유유자적 올라가다 보면 산이 품 안으로 들어와 안기는 기분을 느낀단다. 
"난 말일세, 젊은 날 아등바등 산 게 후회되는 거 있지? 왜 좀 더 여유를 갖지 못하고 그렇게 빡빡하게 살았는지 몰라. 늦게 가도 제 먹을 건 다 있다고 했는데..."
그는 느림을 통해 삶의 행복을 깨달았다며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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