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의 계절이 찾아왔다. 직장마다 하계휴가가 실시되고 거리마다 피서지로 떠나는 이들의 발길로 넘쳐난다. 주말은 아예 길이라기보다 자동차의 행렬이다. 산과 바다를 찾아 떠나는 차량으로 거대한 대열을 이룬다. 여기에 태양은 벌겋게 달군 쇠꼬챙이를 사정없이 내리 꽂는다. 1999년 수원천(연무동)에서 물놀이하는 어린이들(사진:수원시포토뱅크/이용창) 등목에 이어 생각나는 건 풀장이다. 우리 집 사진첩에는 풀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찍어 준 사진이 여러 장 들어있다. 70년대 초였으니 자그마치 40년 전이다. 선풍기조차 귀하던 시절, 아이들의 등살에 못 이겨 없는 살림을 짜내서 실행에 옮겼던 그 풀장 행. 그래도 사진을 보면 수영복에다 물안경까지 착용했으니 갖출 건 다 갖춘 피서였다. 사진을 들여다본다. 물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뭐 하나 부러운 게 없어 보인다. 돗자리 위에서는 다섯 식구가 김밥을 먹느라 정신이 없다.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돈다. 또 다른 사진을 들여다본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얼굴이 환하다 못해 눈이 부시다. 그 옆에는 집사람의 얼굴도 있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느라 얼굴은 야위었지만 행복에 절어 있는 얼굴이다. 아, 가장인 나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웃음을 물고 지켜보고 있다. 사진은 확실한 삶의 기록물이란 생각이 새삼 든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딜 가나 사진부터 찍지 않는가. 만약 사진이 없다면 추억거리도 별로지 싶다. 제아무리 머릿속을 뒤져 더듬어본다 해도 사진이 보여주는 그 확실성에는 못 미쳐도 한참 못 미치리라. 그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독서讀書다. 나는 한여름에 책읽기를 좋아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읽는 책의 맛에 길들여진 지 오래다. 남들이 보면 찌는 듯한 더위에 책이 머리에 들어가겠냐고 할지 모르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활자는 더위를 좋아한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더위를 물리치는 데는 독서만큼 좋은 것도 없다. 책 속의 여행, 그건 가장 경제적이면서도 나를 맑게 세척해주는 또 하나의 정신운동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오히려 여름철에 책과 더불어 피서여행을 했다지 않은가. 조상님들의 삶의 지혜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올해도 더위가 심상찮다. 그러나 그 또한 지나가는 '순간'에 불과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그러하듯이 더위란 녀석도 얼마쯤 기승을 부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풀이 꺾일 것이다. 올여름 피서는 조금 원시적인 방법을 택해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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