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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배웁니다”
최형국/역사학 박사, 수원시립공연단(무예24기)상임연출
2016-01-08 09:13:24최종 업데이트 : 2016-01-08 09:13:24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예로부터 수원 사람은 활쏘기에 능했다. 
반계 유형원이 쓴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를 보면 수원지역의 풍속을 논할 때 "농사를 열심히 짓고, 활쏘기에 힘쓰는 곳이다"라고 맨 서두에 밝히고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성의 연무대에서는 관광객들의 체험용 활쏘기를 비롯하여 매일같이 꼬리긴 화살들이 화성을 가로지른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저 서서 팔 힘으로만 활시위를 당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온 몸의 기운을 한데 모아 화살에 실어 보내야 하기에 활쏘기는 전신운동에 해당한다. 

그 움직임을 보면 이렇다. 두 발을 편하게 벌리고 서서 숨 한번을 들이 마시며 물동이를 머리에 이듯 활을 들어 올린다. 숨을 천천히 내쉬며 앞 손은 태산을 밀듯 하고, 시위를 잡은 뒷손은 호랑이 꼬리를 잡아 당기듯 지긋이 끌어당긴다. 잠시 과녁을 응시하고 멈췄다가 팽팽한 긴장감을 끊어 내듯 화살은 미련 없이 시위를 떠난다. 짙푸른 창공을 향해 화살 한 개가 얇은 잔상을 만들며 허공을 가른다. 이내 저 멀리 떨어진 과녁에서는 맞았다는 둔탁한 소리가 은은하게 퍼진다. 

"활 공부허고" 1880년대부터 1900년 초기의 개화기에 주로 활동한 풍속화가인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의 그림이다. 제목처럼 당시에도 활은 배우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늘 처음처럼 배우고 또 배울 수 있다면 복 받은 인생인 것이다. 올해는 모두들 활 한번 잡아 보시라.

이것이 우리의 전통무예인 활쏘기의 모습이다. 아무런 흔들림 없이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며 화살 한 개 한 개에 온 정성을 담아 수련하는 활쏘기는 그야말로 군자에게 어울리는 무예이기도 하다. 우리네 활쏘기는 기본적으로 이 땅을 지켜온 가장 중요한 군사전술의 핵심이었다. 높고 험준한 산지가 많아 외세를 막아낼 때에는 깊은 산성에 웅거하였다가 적이 몰려들면 쉼 없이 화살을 쏘아 접근조차 어렵게 만드는 전술이었다. 또한 달리는 말 위에서 정교하게 활을 쏘는 기사(騎射)는 고대부터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몸문화의 결정체였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국의 수 백 곳의 활터에서는 화살들이 허공을 가른다. 선조들의 유구한 몸문화가 담긴 활쏘기를 익히기 위하여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훈련에 훈련을 더한다. 

활을 배우기 위해 여러 가지 정진방법이 있는데, 그 중 몇 가지 원칙을 보면 그 움직임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가 될 것이다. 가장 먼저, 안전을 위하여 지형을 살피고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고(선찰지형先察地形 후찰풍세後察風勢), 화살을 잡은 후에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의 자세를 바로 잡는다(흉허복실胸虛腹實 비정비팔非丁非八). 활을 잡은 앞손은 힘껏 밀고 시위를 잡은 뒷손은 화살을 쥐고 팽팽히 끌어 당겼다가 활을 쏘는데(전추태산前推泰山 후악호미後握虎尾), 화살이 표적에 맞지 않았다면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반성해야 한다(발이부중發而不中 반구저기反求諸己).

사대에 올라 활을 쏘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 원칙을 가슴에 새기고 활을 가득 당기게 된다. 이 중 그 시작에는 우리네 삶의 핵심이 담겨 있기도 하다. 
가장 먼저 '선찰지형, 후찰풍세'라 하여 지형과 바람을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긴 안목으로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인생의 미래를 천천히 살피고 혹시 모를 돌풍을 예상하며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세상일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제 갈 길에만 바빠 앞뒤 따지지도 않고 밀어 붙이면 실패는 당연한 것이다. 

활을 잡고 사대에 오르면, 공손이 하단전에 손을 올리고 과녁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하며 "활 배웁니다"라는 말을 전한다. 그저 시위에 걸어 화살을 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 십년을 활과 함께 보낸 명궁들도 늘 처음처럼 배운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올라선다.  늘 배운다는 마음으로 한해를 시작한다면 내실을 더욱 튼튼히 다지는 삶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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