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즐기는 공부법
최형국/문학박사, 수원문화재단 무예24기시범단 수석단원
2014-10-26 11:19:41최종 업데이트 : 2014-10-26 11:19:4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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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타고난 학자였다. 비록 수많은 정적들 속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평생을 살아야 했지만 그래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공부는 정조에게 유일한 안식처이기도 했다. 정조의 어명으로 만들어진 무예서 『무예도보통지(무예도보통지)』를 읽고 있는 필자의 모습이다. 공부의 근간은 소위 '엉덩이 힘'이다. 진득하게 붙어 앉아 글을 읽는 것, 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는 뛰어난 머리 보다 은근과 끈기가 공부에는 더 중요하다. 특히 그의 공부법 핵심에는 쓰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수많은 책을 읽고 그저 머릿속에서만 암송하거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비망록처럼 독서기(讀書記)를 만들어 늘 가까이 두었다. 이런 정조의 공부 방법은 왕위에 오르기 전인 세자시절부터 시작된 것으로 그가 어려서부터 읽었던 모든 책들이 각각의 분류 방식에 따라 정리하였다. 그래서 한가할 때면 이것을 들춰 보는 것이 취미이기도 했다. 이런 일종의 독서 감상문을 통해 정조는 자신이 평생의 공부 내용을 역력히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월이 지나며 더 깨우친 것을 통해 경계하고 반성하는 바로 삼았다. 이런 즐기는 공부로 인해 정조는 경연(經筵)에서 늘 신하들을 능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연이라는 것은 임금이 학문을 닦기 위하여 신하들 중에서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을 궁중에 불러 유학과 관련한 사서삼경을 비롯한 다양한 공부를 진행했던 일종의 토론식 수업이었다. 조선시대 국왕들은 매일 경연을 해야 했으므로 공부가 부족한 국왕은 경연시간이 죽기보다 싫은 시간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폭군이었던 연산군의 경우는 부족한 공부로 인해 경연시간에 딴말을 하거나, 잠시 자리를 비운다는 핑계를 대고 신하들만 놔두고 도망가기가 일쑤였다. 심지어 경연 자체를 없애버리기까지 했으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정조의 그런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그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다. 전체 184권 100책으로 엄청난 분량의 글을 남긴 최고의 기록광이기도 한 조선국왕이 정조이기도 하다. 쉼없이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며 또 다른 글을 남기는 일이 있었기에 조선후기 최고의 성군으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고, 기억할 수 없으면 결국 잊어버리게 된다. 끊임없이 읽고 쓰고 그것을 말하고 행동하는 정조의 공부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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