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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과 ‘온고지신(溫故知新)’
최형국/문학박사,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2015-01-19 08:31:14최종 업데이트 : 2015-01-19 08:31:14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우리가 흔히 쓰는 사자성어 중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 것에서 배워 새로운 것을 깨닫는다'라는 뜻으로 지나간 과거의 일을 모두 잊어버릴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글귀이다. 원래의 글은 논어에 등장하는데,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자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라고 하여 옛 것을 알고 새것을 알면 마땅히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식의 해석된다. 
과거의 지식을 새롭게 갈무리하면 그것이 스승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글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고전속의 글을 읽으며 새 글을 읽는데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풀어내곤 한다. 

그런데 정조의 해석 방식은 조금 달랐다. 그의 해석을 보면 옛 글을 익히면 그 가운데서 쉼 없이 새로운 맛을 알게 되어 자기가 몰랐던 것을 더욱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라고 하며 반복과 깊은 사고가 고전 공부의 핵심이라 하였다. 그래서 정조는 새로운 공부를 위하여 다양한 책을 읽기보다는 한권의 고전을 읽더라도 깊이 있게 읽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살면서 새로운 공부는 평생을 다 받쳐 읽는다 해도 다 배울 수 없을 정도로 축척된 지식의 양은 엄청나다. 따라서 이미 공부한 것과 경험한 것에서 그것의 진정한 의미와 '새 맛'을 알아내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최고의 공부법이라는 것이다.

온고지신에서 등장하는 첫 번째 글자인 '온(溫)'은 이 문장을 해석할 때처럼 '배울:온'으로 쓰인다. 그런데 배움을 상징하는 문자가 어디 '온'자 하나뿐인가. 배울:학(學)이나 익힐:습(習)과 같은 문자도 논어에 쉬지 않고 등장하는데, 하필 그 문장에서 만큼은 '온'이라는 문자를 고집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는 '따듯한 배움'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저 먼 옛날에 써진 고전 속의 글이나 지나가 버린 차가운 옛날의 기억들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세상풍파를 거치며 살아가는 동안 펼쳐진 삶의 온기가 있는 지혜라는 것이다. 

머릿속에는 지식이 잔뜩 들어 차 있지만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차가운 지식이라면 그것은 도서관 속에 먼지와 함께 진열된 낡은 구시대의 유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조는 아마도 '온'자에 그런 의미를 더하여 살아 있는 지혜의 산물로 고전을 읽고 싶었던 것이다. 

죽어 있는 것은 차고, 살아 있는 것은 따뜻하다. 살아 있는 지식,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한 지식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로 전환할 수 있는 배움의 궁극적 가치를 고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8세기 조선의 새로운 학풍을 열었던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이용후생(利用厚生)을 근본으로 하는 실학의 태동과 발전은 그런 사람을 따스하게 하는 학문적 성찰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정조대왕과 '온고지신(溫故知新)'_1
정조19년(1795) 을묘년 원행(園幸) 때에는 국왕이 친히 참석한 가운데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앞에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죽을 끓여 먹이는 진휼 행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때의 행사 모습은 당시의 기록을 모두 모아 놓은『원행을묘정리의궤』중 신풍루사미도(新豊樓賜米圖)에 잘 나타나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온(溫)'에는 과거의 따스함이 담겨 있는 말이다.

백성들이 헐벗고 굶주리면 아무리 화려한 문장이나 음악도 한낱 공염불에 그치지 않는다. 또한 지나치게 폭압적인 권력행사로 두 눈과 귀를 막고 백성들을 억눌러 교화를 강요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에 대한 따스한 눈길과 손길로 그들의 고통과 삶의 응달진 곳을 감싸고 품어내야만 세상은 똑바로 설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든 학문 속에 담겨진 지식을 바탕으로 따스한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그 사람이 진정한 스승이다. 역시 정치도 그와 같다. 시정잡배처럼 권력의 아귀다툼을 위해 제 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촛불 하나를 밝히더라도 사람의 따스함을 풀어내는 정치가 진정한 백성을 위한 정치인 것이다. 정조의 온고지신에 대한 생각은 단순한 지식을 넘어 현실 정치가 어디로 향해 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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