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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피고 진 꽃을 추억함
최정용/시인,언론인
2015-04-06 08:57:01최종 업데이트 : 2015-04-06 08:57:0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4월은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로 시작하는 T. S. 엘리어트(Thomas Stearns Eliot)의 '황무지(The Waste Land)'를 처음 접했을때 웃었다.
촉촉한 봄비가 대지를 적시고 탄성을 지르듯 여기저기 꽃들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4월이 잔인하다니. 그것은 분명 세계 1차 대전이라는 암울함을 겪었던 시인의 시대에나 일어나는 특수한 상황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마다 4월이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오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문구가 식상했다.

그럼에도 '20세기 가장 중요한 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시인의 황무지는 1922년 434줄로 탄생했다. 전체적으로 난해하다. 또 부조화스러운 풍자와 예언의 전환 등이 특히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문학의 시금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의 입구에 잠깐 들어가 보자, 4월이므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다./(후략)…'.
시인에게 4월은 '약간의 목숨을 남겨'준 '약간'의 자비를 지닌 달이었겠다.
434줄 가운데 많은 사람의 뇌리에 오랜 세월 기억되는 구절은 아마 첫 행의 '4월은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과 산스크리트어로 된 주문인 마지막 줄 '샨티 샨티 샨티(Shantih shantih shantih)'다. 시인은 주문(呪文)으로 시를 닫았다. 왜일까.

먼나라 이야기로만 외면했던 잔인한 4월이 가슴을 온통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이 안된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그 참사' 때문이다. 그 날 이후 사실보다 은폐가 실체보다 유령이 더 많이 떠돌았다. 특히 수원의 옆마을 안산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최근 별이 된 아이들을 가슴에 강제로 품어야했던 엄마들이 삭발을 했다. '선체를 인양해달라'는 요구와 함께.

여기에 보수의 아이콘을 자처하는 국회의원이 자신의 SNS에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지 말자는 의견을 밝혀 유가족은 물론 네티즌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2일 "세월호 선체는 인양하지 맙시다. 괜히 사람만 또 다칩니다"라며 "대신 사고해역을 추념공원으로 만듭시다.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겁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동시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 공식 결정 때까지 배·보상 절차를 전면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단체로 삭발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를 함께 링크했다. 이 기사에는 피해자 가족들의 삭발 장면 사진이 함께 담겨 있었다. 어떤 의도일까, 의심스런 대목이다.

그동안 감정을 자제해왔던 유가족들의 분노가 터진 것은 당연지사.
지난 4일 진상규명 촉구 도보행진에 앞서 4·16가족협의회는 출발 전 기자회견에서 해당 의원에게 감정을 표출한다.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김진태 의원에게 욕을 한마디 하고 싶은데 괜찮겠나"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에대해 청중들이 "괜찮다"고 하자 "XXX야, 당신 자식 잃고 나서 가슴에 묻어라. 가슴에 묻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나. 죽을 때까지 찢어지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게 지껄이고 있나. 눈에 띄면 찢어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국회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이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월호 유족들이 저에 대해 원색적인 욕설을 했네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위 사실이 보도된 기사를 링크했다. 참 투명한 뇌구조다.

이것이 우리네 4월의 현주소다.
변죽을 울리는 일부 언론에 편승해 진행되는 재보궐 선거도 '우리네 4월'을 관통하고 있는 세월호를 해결하지 않고는 '그들만의 잔치'이고 '가야할 껍데기'일 뿐이다. 

4월, 피고 진 꽃을 추억함_1
사진/김우영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년이면 가슴에 피멍들만큼 들었다.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나설 때이다. 어쩌려고 해도 어쩌지 못하는 나 같은 필부도 마음이 이토록 먹구름인데, 당사자들이야 오죽할까.

왜냐고? 왜 그래야만 하냐고?
'약간의 목숨'이라도 남겨준 T. S. 엘리어트의 4월보다 우리네 4월은 좀 더 너그러워야 하기 때문이다. 살만한 세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비에 속절없이 떨어진 목련들을 보면서 그 날 별이 된 아이들이 떠올라  가슴이 저렸다. 아름다운 4월을 노래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 속 좁은 글을 용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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