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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내 몸이 천근만근이로구나"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5-05-04 07:45:18최종 업데이트 : 2015-05-04 07:45:1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국민학교 시절 자동차 왕 포드는 마음속 인물이었다. 일제시대 제복 차림의 아버지가 봉은사에서 1932년 BA형 '시보래' 발판에 발을 걸치고 찍은 사진에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시절 깨알 글씨의 500쪽은 됨직한 포드 위인전을 독파하기도 하였다. 

어머니 내 몸이 천근만근이로구나_1
1932년 BA형 시보래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아인슈타인이 마음속에 꼽혔다. 낙제를 한 그는 취리히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특허국에 근무하면서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한다. 바로 을사조약이 맺어진 1905년이다. 그때 이 이론을 이해한 사람은 지구상 7명뿐이었다고 한다. 발표년도를 정확하게 기억하게 된 사연은 고등학교 졸업 꼭 60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고구려 유민 당나라 절도사 고선지 장군을 머릿속에 담았다. 그는 유럽에 화약과 제지기술, 나침반을 전한 유럽문명의 아버지다. 어쩌면 내 인생의 초창기에 전혀 다른 분야의 세 사람을 마음의 양식으로 삼은 셈이다. 공교롭게도 세월이 지날수록 나와는 먼 시대의 인물이 와 닿았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고서야 가장 가까운 시대의 인물을 양식으로 삼을 수가 있었다. 부모님이었다. 겨우 철이 든 것일까? 직장생활 연수중에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거창하게(?) '아버지의 추억'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하기야 지금도 꼼지락 꼼지락 무엇 만들기를 좋아하고 과학적 사고와 호기심 많은 것은 세 사람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아니면  국민학교 시절 그림을 잘 그리셨다던, 자동차와 평생을 함께 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하지만 자유스럽고 선문답을 건네는 행동은 어머니를 닮아서 싶다.  

어머니는 6.26 동란 피난길에 오르기 전, 답십리 친정집에서 양식을 구해 동대문까지 걸어오면서 마주친 북한병사에게 거리낌 없이 쌀자루를 머리에 이어달라고 했다한다. 
동란이 끝나고 모두가 힘든 50~60년대, 어머니는 가끔 당신 몸이 '천근만근' 같다고 지나는 말처럼 했다. 딱히 누구에게 하소연할 여유가 없으니 눈에 띄는 자식들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왜 몸이 '천근만근' 일까? 어이없게도 생활에 지친 몸을 표현하는 의미를 눈치 빠르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때 이미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신 걸까. 절대시간도 확장하며, 절대길이도 짧아질 수 있고, 질량과 에너지는 변환되고, 동시(同時)성도 상대적이라는 이론을 '몸'에 직접 적용하시다니? 아니면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닫으셨나? 나는 고작 '질량불변의 법칙'을 들이대어, '아니, 몸무게가 이랬다저랬다 바뀌다니?'

나는 환절기만 되면 연래행사처럼 감기, 몸살을 '몸'에 걸치고 다닌다. 이때만큼은 피곤하다. 좋아하는 막걸리 음주행사도 횟수와 양을 줄인다. 의사야 물론 술 마시면 안된다고 엄포를 놓는다. 식사량도 줄어들지만 '몸이 무겁고' 마음대로 움직일 형편이 아니어서 하루하루 지내기에 괜스레 짜증이 난다. 

쑥스럽지만 이때쯤이면 '엄마'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어머니는 쏜살같이 달려오신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씀하기를 "얘야, 내 몸이 '천근만근' 같다. 알겠니?" 
감기·몸살과 상대성 이론. 쉽사리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이지만, 나에게는 '천근만근'을 통해 서로 친숙한 사이가 된 지 오래다. 새삼 두 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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