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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의 또 다른 이름
최정용/시인·에코마린뉴스 대표기자
2015-07-24 11:33:31최종 업데이트 : 2015-07-24 11:33:3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인생은 여행의 또 다른 이름_1
인생은 여행의 또 다른 이름_1

여름이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 혹자는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나고 또 다른 이는 더욱 더운 곳을 찾아 이열치열(以熱治熱)을 갈구하기도 한다.
여행은 운수납자(雲水衲子)에게 삶의 전부이기도 한 단어이다. 생각만으로 가슴에 달뜨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시인 김지하는 '푸른 옷'에서 이렇게 읊조렸는지도 모른다.
'새라면 좋겠네/물이라면 혹시나 바람이라면/여윈 알몸을 가둔 옷/푸른 빛이며 바다라면/바다의 한때나마 꿈일 수나마 있다면/가슴에 꽂히어 아프게 피 흐른다/굳어 버린 네모의 붉은 표지여 네가 없다면/네가 없다면/아아 죽어도 좋겠네/…(후략)'
한 때 새를 꿈꿨던 것은 자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게다. 막힘없이 훨훨 날아가고픈 마음의 탈출. 그 꿈이 지상에 내려와 만들어 낸 것이 여행이다.

구름 또는 바람처럼 떠도는 이에게 여행이 주는 재미 가운데 하나는 귀동냥이다. 다른 빛깔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성한 이야기에 푹 빠지다 보면, 아 삶은 얼마나 유의미한 것인가, 웃음 짓게 된다. 귀동냥 가운데 하나, 이 여름에 새겨본다. 

유럽 어느 귀퉁이에 그루지야라는 작고 아름다운 나라가 있다. 이 나라는 유명한 포도 산지로 맛 좋은 와인과 브랜디가 많다. 카프카스의 진주라고 불리는 수도 트빌리시에는 산이 높고 골이 깊은데 그 골짜기에 '쿠라'라고 불리는 강이 흐른다. 강을 따라 마을들이 가늘고 긴 모양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단다. 
이 강변에 작은 선술집이 있는데 마을 최고라 불리는 이름에 걸맞게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게는 맛좋은 와인과 싸고 맛있는 요리가 유명해 한 번 왔던 손님은 반드시 단골이 된다. 트빌리시를 방문하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이 선술집을 들러야 할 정도라니 알만하다. 

이 술청에는 와인과 요리의 매력보다 더 넘치는 것이 있다. 가게 주인과 웨이터, 웨이트리스, 손님들 사이에 오가는 유쾌한 대화가 그 주인공이다. 대화에 묻어나는 선명한 유머 감각과 독설에 도취되면 누구나 '중독' 된다. 
이 가게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정면의 벽에 걸린 게시판에 가게 주인이 그루지야어와 러시아어, 영어로 당부를 적은 종이다. 이 종이에는 매일 다양한 내용의 글이 적힌다. 

예를 들면 이렇다.'어서 오십시오, 저희 가게에서는 손님이 신입니다. 손님이 희망하는 것이 곧 법입니다.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서 저의 스태프는 모두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종 잔에 담뱃재를 털거나 가래를 뱉는 손님이 계시는데 그런 분께는 더욱 그 요구를 받들어 재떨이에 와인을 따라 드리고 있습니다.' 이 게시판이 주는 매력 때문에 이곳을 찾는 손님도 많다고 한다. 글이 이럴진대, 누군들 다시 찾지 않겠는가. 술 마시기 전에 글에 이미 취하니 세상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술청이 주는 즐거움의 백미를 이 선술집 게시판은 이미 알아버린 것이다. 

그러나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된 이후 이 나라도 민족 간의 크고 작은 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권력투쟁은 또 민심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선술집의 풍경은 여전했으며 그 어느 날, 게시판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음주가 종교보다 바람직한 이유> 
1.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사람은 아직 없다.
2. 다른 술을 마신다는 이유만으로 전쟁이 일어난 경우는 없다.
3. 판단력이 없는 미성년자에게 음주를 강요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4. 마시는 술의 상표를 바꿨다는 이유로 배신자 취급을 당하지 않는다.
5.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화형이나 투석형에 처해진 사람은 없다.
6. 다음 술을 주문하기 위해 2000년이나 기다릴 필요는 없다.
7. 술을 많이 팔기 위해 속임수를 쓰면 법에 따라 확실히 처벌받는다.
8. 술을 실제로 마시고 있다는 것은 간단하게 증명할 수 있다.

삶의 가치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유머다. 한때는 인생의 윤활유 정도로 치부됐었는데 반백(半百)의 삶을 지나 온 지금 돌이키면 유머는 그 자체로 목적이다. 
상수(上壽)의 나이를 살아 온 인생에게 물었더니 그 역시 같은 대답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이더란다. 다른 사람 미워하지 말아라. 아무리 나쁜 사람도 80살을 넘으니 저세상에 가더라. 하늘이 스스로 거두어 간다는 뜻이겠다. 

습도가 높아 더 더운 요즘이다. 살만 맞닿아도 주먹이 먼저 날아가는 계절. 빗줄기나 드문 바람에 기대 좋은 이들과 술을 기울이는 것도 더위를 잊는 지혜가 아닐까.
삶에 지친 그대들에게 그루지아의 선술집 게시판에 걸려 있는 글귀를 음미하며 한 잔 권한다. 그리고 묻는다. 지금 내가 신봉하는 종교가 정작 술보다 나은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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