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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雜)'들에게 희망을
최정용/시인, 에코마린뉴스 대표기자
2015-08-23 08:37:10최종 업데이트 : 2015-08-23 08:37:10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잡(雜)'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1. '여러 가지가 뒤섞인' 또는 '자질구레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2. '막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사전에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으니 당연히 사회적 대접조차 좋을 리 없다. 좋지 않을 일이나 사람, 또는 사물 등의 앞자리에 당연히 붙는 접두사가 됐다. 그동안 천하게 여겨졌던 단어 가운데 대표자리에 '잡(雜)'이 자리 잡고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잡놈, 잡고기, 잡초….
참으로 오랜 세월 서러움 속에 살았다.
이런 '잡(雜)'씨 집안을 대중들에게 소개해 관심을 불러 일으킨 이가 가수 나훈아다. 그의 노래 '잡초'는 '잡(雜)'에 대한 이미지를 반전시켰다. '아, 잡초에게도 이런 삶이 있구나'라는.
가사를 살짝 들추면 이렇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이름 모를 잡초야 한 송이 꽃이라면/향기라도 있을텐데/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발이라도 있으면은 님 찾아 갈 텐데/손이라도 있으면은 님 부를 텐데/이것저것 아무것도 가진게 없네/아무것도 가진게 없네/(…)'

홀로 태어나 모진 세월 외로움을 견디며 지탱해 온 잡초의 삶은 인간 군상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손잡아 함께 할 님이 없어도 외롭다 생각말라. 삶이란 묵묵히 견디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들아 함부로 세상을 버리지 말아라. 나 역시 견디고 있으니….'
뭐 이런 메시지다.

그러나 선수(?)들은 안다. 사람 가운데 잡놈이 가장 끈질기고 매운탕도 잡고기 매운탕이 가장 맛있으며 풀 가운데 잡초가 가장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을.

최근 이 잡초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책이 출간돼 화제다.
처처(處處) 요리가 대세인 세상이다.  그러나 그 어떤 셰프(chef)도 상상하지 못했던 식재료인 잡초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요리계에 충격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찬찬히 들여다 보면 '요리의 혁명'이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이는 '요리의 완결판'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바구니 끼고 들로 마당으로 잡초 레시피(권포근·고진하 지음, 웜홀 刊)'가 그 주인공이다. 눈 밝은 권포근 여사가 있어 잡초를 보약의 반열에 올렸다.

출판사의 서평에 따르면, 인류와 지구의 생명들이 대대로 먹었던 시원(始原)의 먹거리는 수만종에 달하는 잡초였다. 그러나 산업시대 이후 인간에게 채택된 일부 잡초들만이 대량 생산되면서 들판에 널려있는 잡초는 박멸과 천대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지난한 시간동안 버림받았던 잡초를 인간의 식탁으로 다시 불러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잡초와 인간의 불화 종결자'라는 것이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그것이 가능한 까닭은 유기농 식당을 경영한 경험이 있는 '잡초 마니아' 권포근 여사와 '아내보다 잡초'라는 마인드를 지닌 시인 고진하 부부의 혜안과 오랜 경험이 있어 가능했다고 덧붙인다.

 

'잡(雜)'들에게 희망을_1
사진/김우영

지은이는 '개망초무침', '토끼풀 샐러드', '잡초비빔밥', '잡초모둠꽃떡', '질경이 차' 등 상상을 초월한 잡초 밥상을 세상에 차렸다. '잡(雜)'을 잡으로 보는 것은 '인간의 눈이 이미 천박해졌다는 증거'라는 경고를 던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책을 보는 내내 했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했던가.
인간이 천대했던 잡초가 대안 식량으로 부상하고 있다. '잡(雜)'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 시대다.

이 부부의 삶은 KBS 1TV 인간극장을 통해 어렴풋이 알려졌다.
하지만 언제나 낮은 곳에 눈을 두고 그늘진 세상에 빛이 된 '영성 시인' 고진하와 그 옆에서 항상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고 묵묵히 '동반의 길'을 함께 한 권포근 여사의 삶을 지켜 본 이들이면 이들의 '잡초행보'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고도 남음이 있다.

이들이 발품을 팔아 지어낸 이 책에는 잡초를 이용한 레시피 86가지가 계절별로 놓여있다. 주식과 부식은 물론 디저트까지 자급자족할 수 있는 보약밥상이 펼쳐놓고 읽노라면 눈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월든'을 쓴 소로우 부부의 삶이 겹쳐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고진하 시인의 시 '잡초 비빔밥'을 가슴에 새기며 글을 놓는다.

'흔한 것이 귀하다./그대들이 잡초라고 깔보는 풀들을 뜯어/오늘도 풋풋한 자연의 성찬을 즐겼느니/흔치 않은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은/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숱한 맛 집을 순례하듯 찾아다니지만/나는 논 밭두렁이나 길가에 핀/흔하디 흔한 풀들을 뜯어/거룩한 한 끼 식사를 해결 했느니/신이 값없는 선물로 준/풀들을 뜯어 밥에 비벼 꼭꼭씹어 먹었느니/흔치 않은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이/개망초 민들레 질경이 돌미나리 쇠비름/토끼풀 돌콩 왕고들빼기 우슬초 비름나물 등/그 흔한 맛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너무 흔해서 사람들 발에 마구 짓밟힌/초록의 혼들, 하지만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나니/그렇게 흔들리는 풋풋한 것들을 내 몸에 모시며/나 또한 싱싱한 초록으로 지구위에 나부끼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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