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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된장, 그리고 보리밥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5-09-05 11:17:23최종 업데이트 : 2015-09-05 11:17:23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어머니, 된장이 떨어져갑니다 

플라스틱 통에 담아 냉장고에 두고 먹던 된장이 이제 밑바닥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5년도 더 먹어왔던 된장이다. 무릇 인생길은 반을 넘어서면 내리막길은 더 빨라진다던데 냉장고에 두고 먹던 된장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처음에는 이 많은 것을 언제 다 먹을까하고 생각을 해보곤 하였지만 얼마 남지 않은 된장의 소비속도는 더 빨라지는 느낌이다. 냉장고의 된장은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시중 된장과 달리 손수 집에서 담근, 오랫동안 내 입맛에 길들여져 온 된장이다. 바로 어머니가 직접 메주를 쑤어 담근 순수 우리 된장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좁은 아파트에 거주하시더라도 때만 되면 항상 고추 말리랴, 메주 쑤어 장 담그랴 바쁘셨다. 하기야 어머니 형제 분 모두 일찍 돌아가시고 가까운 연배 친척이 안 계시니 당신이 해 오셨던 옛 생활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일 자체가 당신 스스로 인생을 관조하는 의미가 있었을 게다. 6.25 피난살이를 끝내고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께서는 사변 전에 담가놓고 피난길에 올랐던 간장이, 그때까지도 서울 집 장독대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시곤 무척 반가웠다고 한다. 내 국민학교 시절, 그 간장을 애지중지 하며 음식을 만드시던 어머니 모습이 기억난다. 장맛은 오래 묵을수록 맛이 난다지. 그래서 어머니는 장맛은 장독에 있다고 생각하고 오래된 장독에 오래 묵혀 제 맛을 익혀온 것이다. 

어머니는 자식들과 아파트 생활을 함께 하시면서도 오래 전부터 사용하던 항아리를 이사할 때마다 옮겨 다니셨다. 그리고 옛날처럼은 못하더라도 그런대로 장을 담가 오셨다. 요즈음은 우산꽂이 장식용으로 변해버린 투박하고 볼품없고 어딘지 촌색시 티 나는 옛 마포나루 새우 젖 항아리도 아파트에 간직해 두셨을 정도다.

나는 어릴 때 된장독을 열어 보고 된장 표면에 하얗게 가시가 낀 것을 보고는 지저분한 음식도 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냄새가 싫었다. 어느 땐가는 통통하게 살이 찐 커다란 구더기를 보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구더기 나는 것을 막으려고 파리가 들어가지 못하게 항아리 입구를 단단하게 철망이나 망사로 둘러싼다. 그러나 파리는 그게 아니다. 후에 알고 보니 파리는 햇볕을 쪼이기 위해 항아리 뚜껑을 열어 놓으면 망사 위에 앉아 조그만 구멍사이로 알을 싸서는 밑으로 떨어뜨린단다. 자연히 구더기가 생기게 마련이다. 

연로해지시자 힘에 부치신 어머니는 예전처럼 많은 양의 된장, 고추장을 담그지 못하셨다. 하지만 아이들이 장난감을 새로 사면, 보고 또 보고 즐거워 가지고 놀듯이 적은 양이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아파트 베란다에 놓아둔 된장, 고추장 항아리 뚜껑을 밀어 보시곤 흐뭇해 하셨다. 

그 해에도 어머니는 된장을 담가 놓으셨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어느 정도 숙성해지자 어머니는 된장을 플라스틱 통으로 옮겨 냉장고에 보관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어머니의 된장을 무려 5년 이상이나 애용하였다. 

오랫동안 밥상을 장식하던 된장도 이제 거의 떨어져간다. 된장을 통해 '어머니의 손맛'이 내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왔는데, 오늘 이 된장마저 없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어머니가 생존해 계신다면 행여 된장을 시장에서 사 먹게 내버려둘까. '어머니, 된장이 떨어져갑니다.'

어머니, 저도 보리밥을 먹어야 할 때가 왔나봅니다
 

어머니의 된장, 그리고 보리밥_1
사진/유병화 시민기자

'다들 가는 군대인데 무슨 걱정이야' 내일이면 훈련소로 들어가야 하는 아들 녀석이 나에게 던지는 한마디다. 어쩌면 내가 입대할 때 어머니께 드렸던 말씀과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을까? 난 가슴이 뭉클해져 섭섭한 속마음만 조용히 추스른다. 퉁명스런 내 한마디에 예전의 어머니도 바로 이런 심정이셨겠지 하면서. 

나는 몸이 약해 어려서부터 감기에 잘 걸렸다. 그런 내가 입대하게 되어 논산훈련소에서 기본교육 6주, 특기교육 4주 과정을 끝내고 하사관학교에 입교하였다. 어둠이 깔릴 무렵 트럭 편으로 단체 인계되었는데 화장실에 가보고는 깜짝 놀랐다. 재래식 화장실의 바닥 송판이 국민학교 때 자갈가지고 빛냈던 교실바닥처럼 반질반질 하지 않는가. 와, 이 동네 군기께나 세겠다. 여기서 16주를 보냈다. 훈련 끝내고 부대 배치 전 잠깐 집에 들렀더니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애가 눈빛이 달라졌다고 하신다. 

보리 고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자란 나는 군대에서 보리밥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군대의 보리밥은 시커멓고, 금세 딱딱해지고, 게다가 당시 보리는 물에 불려야 쌀과 함께 밥을 지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눌린 보리쌀인 납작보리가 이용되었다. 부식 또한 형편없었다. 

어머니께서는 이런 사정을 알리 없으셨지만 모든 것을 자식 생각하는 마음으로 직감적으로 꿰뚫으셨다. 그리고는 조금이나마 고통을 함께 하는 마음을 갖기 위하여 온 식구의 보리밥 혼식을 거국적으로 선포하셨단다. 혼식기간은 내가 제대하여 집에 올 때까지. 
나는 오래 동안 그 사정을 몰랐다. 어디 자식이 부모 마음을 손톱만큼이나 알까. 그것도 부모님 살아  생전에. 
제대 후 많은 나날이 지난 다음 내가 물었다. 예전에 안 먹던 보리밥을 왜 먹느냐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군대에 가서 보리밥을 먹으며 고생하는데 식구들이 무슨 낯으로 쌀밥을 먹을 수 있었겠니. 그게 습관이 되어 지금까지 먹고 있단다'. 난 차마 말문을 이을 수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다시 그때를 생각해 보아야 소용없는 일이지만 내 자식이 군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니 문득 내가 '다들 가는 군대인데 무슨 걱정이야' 하면서 부모님의 걱정을 무시했던 경험이 되살아난다. 
이제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는 있게 되었지만, 내 속마음을 어떻게 어머니께 전해 드릴 수 있을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머니, 저도 보리밥을 먹어야 할 때가 왔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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