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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지도-전통시장 부활의 시작
최정용/시인
2016-07-10 11:39:06최종 업데이트 : 2016-07-10 11:39:0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시장(市場)가는 길은 멀었고 혼자였다.
학교가 파(破)하면 소년은 그 길을 걸었다. 먼저 하교(下校)한 친구들을 찾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겠다. 신작로(新作路)를 따라 걸어가면 바다보다 먼저 시장(市場)이 나왔다. 좌판을 지나 제법 지붕이 있던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는 정육점이 있었고, 대부분 어물전(魚物廛)이었다. 1970년대 강원도 속초시 중앙시장 풍광이다. 친구들 대부분은 가업을 돕고 있었고, 눈 맞은(Eye Contact) 아이들은 슬금슬금 부둣가에 집결(?)했다. 바다와 갈매기와 어울려 놀던 시절이다. 

헌데, 어느 날부터 시장이 더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비릿한 내음과 버무러진 땀 냄새가 빚어낸 오묘한 향(香)이 교교히 흐르던 공동체. 무심한 듯 흩어진 어른들의 눈 빛. 함경도 사투리가 넘나들던 소란 함들이 '살아있음'을 가르치던 학교, 그 자체였다. 이제 와 돌이키면, 그렇다. 진짜 학교는 시장이었다. 그날이후 갈매기와 헤어져 시장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지금 비록, 현대화가 됐지만 옛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속초 중앙시장이다.  

그 후로 20여년. 글을 통해 알게 된 시장은 슬픔이었다. 스물아홉의 나이로 요절한, 그래서 지금은 안양 천주교 공원묘지에 몸을 뉘고 있는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에서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시장에 간 우리엄마/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아주 먼 옛날/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엄마보다 먼저 찾아오는 어둠을 맞아야 하는 소년에게 시장은 얼마나 먼 나라였을까. 혹, 가면 오지 않을 피안(彼岸)이거나 레테의 강 저편이었을지도 모른다, 시장은.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보다 먼저 나를 갉아먹는 검은 빛의 사제들을 보아야했던 그 아이에게 시인은, 또는 요절은 숙명이었을 터. 시장은 이렇게 다른 프리즘으로 삶에 투영된다. 그대, 혹은 내게.

그리고 또 20년.
전통시장이 진화하고 있다. 대형 몰에 밀려 수동적이던 그들이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수원시 영통구 구매탄시장이다. 구매탄시장의 고민은 이렇게 시작된다.
'전통시장은 어린 시절 추억과 동시대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자주 찾는 사람이 아니면, 어떤 가게가 어디에서 무엇을 파는지 일목요연하게 알기 힘들어 찾기를 꺼려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 '구매탄시장 이야기지도' 발간이다.

지도의 내용은 이렇다.
구매탄시장의 역사와 장점을 소개한 '친절하고 정겨운 우리 동네 전통시장, 구매탄시장'과 약도, 상점리스트, 상점소개 등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여행자들에게 전 세계 곳곳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여행길라잡이 '외로운 지구(Lonely Planet)'은 아니더라도 구매탄시장을 찾는 이들은 적어도 한쪽 눈을 감아도 쉽게 원하는 곳을 찾을 수 있게 제작됐다.

조금 더 펼쳐보자.
'친절하고 정겨운 우리 동네 전통시장, 구매탄시장'에는 이곳이 40년의 역사와 하루 평균 500~600명, 명절 대목과 김장철에는 1천~1천500명이 이용하는 곳으로 주민들이 매탄시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소개한다. 또 '수원시의 대표적인 주택가 골목시장이며 영통구의 단 하나뿐인 전통시장으로 좋은 상품과 친절한 서비스로 주민의 삶과 함께하는 활기차고생기넘치는 현대화된 전통시장'이라고 자랑한다.

이뿐인가.
▲영통주민이 만들고 주민이 키운 지역시장 ▲깨끗한 시설로 이용이 편리한 현대화 시장 ▲싱싱하고 질 좋은 상품 가득한 명품시장 ▲주민에게 언제나 활짝 열린 우리 동네 시장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정다운 시장 등으로 나눠 구매탄시장만의 장점을 알리고 있다.
이밖에 시장의 약도를 상세히 그려 찾는 이들의 발품을 줄였으며 전체 상점리스트를 연락처와 함께 소개했으며 먹거리 상점 16곳의 역사와 특징을 소개한 '동네 밥상'을 실어 고객의 고민을 줄였다.

김영섭 (주)구매탄시장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구매탄시장을 찾는 소비자들께서 보다 편리하게 시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이야기 지도를 제작했다. 수원시 대표적 전통시장인 구매탄시장에서 싱싱하고 질 좋은 먹거리와 사람 사는 흥겨움을 함께 느껴 전통시장의 이미지를 새롭게 했으면 좋겠다."
한평생 전통시장에서 살아온 사람의 절절함이 묻어난다.

 

이야기지도-전통시장 부활의 시작_1
이야기지도-전통시장 부활의 시작_1

또 있다. 지도 발간과 함께 '검은 비닐봉투 안쓰기 운동'을 펼쳐 친환경 전통시장의 기초를 다지고 있다. 이처럼 눈물과 설렘이 녹아있는 전통시장의 제3의 길을 찾는 구매탄시장의 노력이 다른 전통시장에도 일파만파로 번지기를 바란다. 
불가(佛家)의 선종(禪宗)에서 '줄탁동기(啐啄同機)'라고 했다.병아리(전통시장)가 세상으로 나오려 안에서 껍질을 쪼았으니 이제, 어미 닭(시민)이 밖에서 화답할 차례다. 그래야 상생(相生)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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