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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인재 살리기
최형국(문학박사, 수원문화재단 무예24기 수석단원)
2014-11-23 11:13:15최종 업데이트 : 2014-11-23 11:13:1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세상에는 참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다. 아침 출근길에 옷깃 스치며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당당히 한 걸음을 내딛는다. 저마다 얼굴도 능력도 다르지만 이 세상을 지탱하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모두들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며 조직의 활기를 더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핵심 간부로 큰 사업이나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혹은 어떤 사람은 그 일을 직접 수행하기 위해 발바닥에 땀나게 현장을 뛰는 사람일 수도 있다. 

정조의 인재관은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기량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이었다. 특히 당파와 지역을 비롯한 연줄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오로지 실력 위주의 인재 살리기에 집중하였다. 정조의 인재에 대한 생각은 '탁한 물도 물이요, 낮은 곳의 물도 물이다'라고 역설한 것에도 살필 수 있듯이 적절한 용병술이 핵심이었다. 오로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당파에서만 인재를 찾는 것이 아니라 비록 세력은 없을 지라도 개인의 능력이 출중하거나 해당 일에 적당하다고 판단된다면 그 사람을 바로 등용했다. 

또한 단순히 좋은 인재를 뽑고 적당한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좋은 인재를 키우기 위하여 수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정조는 인재를 기르지 않으면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할 때 쓸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난세에 영웅난다'라는 말을 철저히 부정하고 좋은 시절에 인재를 길어야 난세를 풀어갈 사람을 만들 수 있다고 쉼 없이 신하들에게 인재 키우기를 강조하였다.

예를 들면, 집의 핵심 기둥인 대들보나 배의 중심축을 잡는 용골에 쓰이는 재목의 예를 들며 수십 년에 걸쳐 키워야 나라의 기둥으로 삼을 만한 인재를 배출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혹시 곧게 잘 잘라고 있는 나무를 도끼를 가진 자들이 날마다 침범해서 제대로 자라기도 전에 베어 버리거나 병충해에 공격받아 스스로 죽어 버리는 일이 없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 봐 줘야 한다고 하였다. 

정조의 인재 살리기_1
팔달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정조대왕 동상의 모습이다. 지금도 수원을 굽어보며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오로지 사람만이 희망이고 미래다. 정조의 인재 기르기 방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러한 정조의 인재관에 의해서 새롭게 정계에 입문한 이들이 바로 이덕무ㆍ박제가ㆍ서이수ㆍ유득공 등이다. 이들은 모두 반쪽짜리 양반이라는 비웃음을 당하던 서얼출신이었기에 뛰어난 인재이었음에도 충분히 관심을 받지 못하던 처지였다. 정조는 오로지 그들의 능력과 발전가능성을 보고 규장각이라는 핵심 기구에 그들을 배치했던 것이다. 

이들은 정조대 씽크 탱크로 불렸던 규장각의 초대 검서관으로 등용되어 당대 문화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덕무의 경우는 간서치(看書痴-책만 읽는 바보)라 불릴 정도로 박학다식의 대명사였으며, 박제가는 청의 새로운 문물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바탕으로 북학파의 스승으로 불렸던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유득공은 지워져 버린 우리의 소중한 역사인 발해의 역사에 대해 재조명하고 사람들에게 그 소중함을 알린 선구자적인 역사학자이기도 했다. 서이수는 관료들이 보는 서적을 검토하고 직접 필사할 정도로 명문으로 이름을 날렸던 인재이기도 했다. 

각종 인맥과 학맥 등 오로지 연줄잡기에 급급한 오늘의 현실에서 정조의 인재 기르기 방식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로지 제 모양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용병술이 중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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