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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죽히죽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6-07-25 08:32:08최종 업데이트 : 2016-07-25 08:32:0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국민학교 6학년 국어시험 문제에 '恩惠'가 나왔다. 읽어보고 한글로 쓰라는 문제다. 머리를 굴리고 굴리고도 결국 '은혜'를 쓰지 못했다. 당시 국민학교 고학년 국어교과서에는 한글 단어 뒤에 괄호를 하고 한문을 달았다. 간혹 담임선생이 먹물로 아예 한글단어를 지우 라기도 했다. 책 읽기에 마냥 불편하였지만 한문능력을 높이려는 의미로 활용됐다. 

이번에는 '길 가는 도중에'에서 '도중'을 한문으로 쓰란다. 에이 이쯤이야 하면서 '道中'이라 적어 놓고는 의기양양하였다. 주위 녀석들도 나와 같았다. 그런데 '途中'이란다. 아이쿠. 또 하나. '차차'의 뜻은? 아무 생각 없이 '점점'이라고 썼다. 주위 녀석들은 점점은 생각 않고 '자꾸자꾸'. 에이, '차츰', '점차'가 정답이라지. 

4학년 산수시험 문제. 6면체 모형을 보여주면서 가로, 세로, 높이를 알려주고 이를 펼쳤을 때 면적을 계산하란다. 쉽게 계산을 끝낸 뒤 답을 적어 넣었다. '○○㎤'. 아이쿠, 또 틀렸네. 단위가 제곱센티미터(㎠)인 것을. 

사회생활시험에 일본의 수도는? 라는 문제가 나왔다. 당시 나는 세계 각국의 수도 이름을 달달 외워 대륙별로 줄줄 꿰찰 정도였다. 후에 직장생활 연수중 미국인 강사가 각국의 수도 이름 퀴즈를 냈다. 이때 나의 국민학교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온드라스' 수도는? 한국과 멀리 떨어진 카리브 해의 조그만 나라를 들먹인다. 즉각 '테구시갈파'. 그러나 표정은 '???'. 다시 '테구시갈파'. 강사는 깜짝 놀라면서 '으응 테구시갤퍼~'. 처음부터 한국식 발음을 못 알아들은 것이다. 그리고는 '지리교사'라고 치켜세운다.  

그래서 '이까짓 일본 수도쯤이야'. 그런데 도꼬?, 도코?, 별안간 한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는다. ㄱ, ㄲ, ㅋ, 찬찬히 생각해도 써지지 않는다. 가장 쉬운 문제를 틀리려니 생각하니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기지가 발휘되었다. '도쿄'는 '東京'이다. 흐뭇하게 '東京'을 써 넣었다. 담임선생도 놀랐을 거다. 그런데 10여 년 전에도 '엎어지다'의 'ㅍ'받침이 영 써지지 않아 틀린 줄 알면서도 할 수 없이 'ㅂ'받침을 사용, '업어지다'라고 쓴 경험이 있다. 

4학년 미술선생은 신경질적 삼십 줄 여선생이었다. 다음시간에는 꼭 크레파스를 준비해 오라고 엄포를 놓았다. 나는 까먹었다. 그때는 한 책상에 짝과 두 명씩 앉았다. 빈손인 학생은 처음부터 교단 앞으로 불러 세웠다. 그리고 앞줄서부터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다가온다. 나는 눈 하나 까딱 않고 짝의 크레파스 반을 덜어 뚜껑에 담아놓고 기다렸다. 

조그만 녀석이 장을 펼친 것을 모를 리가 있나? '당장 나가!'. 교단 앞으로 나가란다. 버텼다. 여선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세워 놓고도 분이 안 풀리는지 집에 가라고 길길이 악을 쓴다. 눈물이 나왔다. 그 순간에도 여선생 하얀 블라우스안의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금목걸이는 아닌데... 울면서 주섬주섬 가방을 싸들고 교실을 나섰다. 여선생이 버럭대며 쫒아 나온다. 녀석들만 놀랐으리라.   

가끔 50년대 국민학교 실패담이 조목조목 기억날 때가 있다. 마냥 별난 일도 아니지만 결국은 인생의 '나비효과'를 나타냈는지는 모른다. 오늘도 곰곰이 앞뒤 과정을 생각하면 슬그머니 입 꼬리가 올라간다. 그리고 히죽히죽 웃어댄다. 옆에서 쳐다보는 아내는 벌써 치매증상이 오냐고 이죽거린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절로 입 꼬리가 올라가는 걸 어떡해?  

히죽히죽 _1
히죽히죽 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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