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파초를 그린 이유
최형국/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시범단 상임연출, 역사학 박사
2016-05-08 10:51:38최종 업데이트 : 2016-05-08 10:51:3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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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 중 가장 외로운 국왕이 누구였느냐 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필자는 자연스레 정조(正祖)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생부는 죄인으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이며, 국왕과 함께 정치를 펼칠 신하들 중 상당수는 아비의 죽음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기에 마음을 나눌 정치적 동반자가 그 어느 국왕 보다 적었다. 정조어필 파초도(正祖御筆 芭蕉圖) : 잎이 넓어 가난한 선비들은 파초의 잎에 붓글씨 연습을 하기도 하였다. 격물치지를 파초를 통해 읽고자 한 옛 선비들의 마음 조금이나마 헤아려 볼 때다. 정조 역시 그런 파초의 삶과 같은 덕성을 키우고자 그 식물을 가까이 하고 시까지 읊었다. 파초처럼 늘 새로운 지식의 갈구하며 덕성을 표현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정조가 남긴 파초시를 보면 이렀다. 정원에 자라나는 봄새싹은 아름답고 / 庭苑媚春蕪 푸른 파초는 새 잎을 펼치는구나 / 綠蕉新葉展 펼쳐 올라온 그 모습은 빗자루처럼 길쭉한데 / 展來如箒長 탁물이란 대인들이 힘쓰는 것이었구나 / 托物大人勉 정조는 파초 짙푸른 잎이 길게 펼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노력을 통해 대인 즉 성인(聖人)이 되고 싶은 마음을 시에 살포시 담았다. 그 대인은 바로 만백성과 신하들을 감싸 안은 군사(君師)의 지위와 정치적으로 화합하는 성인 군주의 모습이었다. 비록 말하지 못하는 식물이지만 자연에는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순리가 담겨있다. 봄 햇살에 신록이 깨어나는 4월 정조처럼 파초를 그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갈고 닦아 보자.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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