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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파초를 그린 이유
최형국/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시범단 상임연출, 역사학 박사
2016-05-08 10:51:38최종 업데이트 : 2016-05-08 10:51:3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조선의 왕 중 가장 외로운 국왕이 누구였느냐 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필자는 자연스레 정조(正祖)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생부는 죄인으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이며, 국왕과 함께 정치를 펼칠 신하들 중 상당수는 아비의 죽음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기에 마음을 나눌 정치적 동반자가 그 어느 국왕 보다 적었다.

그러나 그는 사도세자의 아들이기 전에 조선을 상징하는 국왕이었다. 개인적 한풀이 보다는 국가를 책임져야 하는 군주였기에 정치라는 공론의 장을 통해 이를 해소하려고 했다.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줄 수 있는 신하들이었다. 조선전기의 경우 국왕과 신하의 관계는 자연스레 어버이와 자식과 같은 방향성을 유지했다. 따라서 국왕권이 신권을 압도하는 국왕중심의 정치가 자연스러운 형태였다. 그러나 임진년과 병자년의 양난을 거치며 백성들의 삶이 곤궁해졌고, 인조반정을 거치면서 국왕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밖에 없었다. 이른바 신권이 왕권을 압박하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지형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정조는 조선에서 제일가는 성리학자였다. 혹독한 유학공부로 말년에는 안경 없이는 한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였을 정도였다. 그가 편찬한 성리학을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낸 저술과 방대한 논술, 그리고 당대 유행했던 북학(北學)까지도 성리학적 관점으로 새롭게 디자인할 정도로 학문적 경지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런 이유로 정조는 임금이자 스승인 '君師(군사)'로 자처하며 국정을 풀어갔다. 정조시대 대표적인 인재육성책이었던 규장각의 초계문신제 뿐만 아니라, 성균관과 사학(四學) 그리고 지방의 유생들을 시험하고 선발하는 일체의 과정을 정조가 직접 주관함으로써 당대의 학풍을 주도해 나갈 수 있었다.

그때 그가 그린 그림이 파초도(芭蕉圖)였다. 지금도 수원 화성박물관 상설전시공간의 첫 공간을 채우고 있는 그림이기도하다. 성리학 공부의 기본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고 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정치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이때 자신을 갈고 닦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덕성이었다. 자신의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하여 생활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반듯한 사람의 마음을 만드는 것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파초는 그런 덕성을 살피는 좋은 식물로 조선의 선비들에게 인식되었다. 송의 성리학자 장재(張載)는 덕성을 잘 기르고 새로운 지식을 배양하는 마음을 파초의 성장 과정을 통해 발견하고 '파초'라는 시를 남겨 조선시대 지식인들에게 파초는 격물치지의 대상으로서도 인식되었다. 파초의 잎은 푸르고도 넓다. 그리고 그 넓은 잎이 지지 않으며, 먼저 나온 잎이 어느 정도 자라면 곧이어 늘 새로운 잎이 말려 나온다. 이런 이유로 조선의 사대부가 안방에는 늘 파초 한그루가 조심스레 화분에 담겨 겨울나기를 하곤 하였다. 

정조가 파초를 그린 이유_1
정조어필 파초도(正祖御筆 芭蕉圖) : 잎이 넓어 가난한 선비들은 파초의 잎에 붓글씨 연습을 하기도 하였다. 격물치지를 파초를 통해 읽고자 한 옛 선비들의 마음 조금이나마 헤아려 볼 때다.

정조 역시 그런 파초의 삶과 같은 덕성을 키우고자 그 식물을 가까이 하고 시까지 읊었다.
파초처럼 늘 새로운 지식의 갈구하며 덕성을 표현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정조가 남긴 파초시를 보면 이렀다. 

    정원에 자라나는 봄새싹은 아름답고 / 庭苑媚春蕪
    푸른 파초는 새 잎을 펼치는구나 / 綠蕉新葉展
    펼쳐 올라온 그 모습은 빗자루처럼 길쭉한데 / 展來如箒長
    탁물이란 대인들이 힘쓰는 것이었구나 / 托物大人勉 

정조는 파초 짙푸른 잎이 길게 펼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노력을 통해 대인 즉 성인(聖人)이 되고 싶은 마음을 시에 살포시 담았다. 그 대인은 바로 만백성과 신하들을 감싸 안은 군사(君師)의 지위와 정치적으로 화합하는 성인 군주의 모습이었다. 비록 말하지 못하는 식물이지만 자연에는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순리가 담겨있다. 봄 햇살에 신록이 깨어나는 4월 정조처럼 파초를 그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갈고 닦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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