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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길 원했던 정조대왕
최형국/문학박사, 수원문화재단 무예24기 시범단 수석단원
2014-04-28 07:12:09최종 업데이트 : 2014-04-28 07:12:0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지난 4월 25일은 '법의 날'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구속하고 억압하게 만든 '법'은 태생부터 한계가 있었다. 법은 인간이 이미 지은 죄를 처벌하고자 만든 것이기에 늘 죄보다 한 걸음 늦게 걸어 온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에는 인터넷을 통해서 발생하는 수많은 범죄를 구속하는 법이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문자화된 법은 날로 사회적 진화의 가속도를 높이고 있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를 모두 담아 낼 수 없기에 법에는 늘 여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정조시대에도 지금처럼 사람은 살고 있었다. 그래서 법이 필요했고, 법이 존재했다. 문제는 그때도 법의 여백이 컸다는 것이다. 정조(正祖)는 그 법의 여백을 평등의 입장에서 채우려고 했다. 
왕위에 오른지 2년째가 되던 해 첫 달에 정조는 '흠휼전칙(欽恤典則)'이라는 일종의 법집행 준칙서를 반포하였다. 그 준칙서를 발표하면서 서두에 "형벌이란 형벌이 없어지게 되기를 기약하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하며 법 집행자들의 마음가짐을 다잡으려 했다.

'흠휼(欽恤)'이라는 이름을 풀어 보면, '삼가고 두려워하며 불쌍히 여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로 똑같은 인간이 죄지은 인간을 처벌하는 행위에 대해 가능하면 삼가고 두려워해야 하며 그 근본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법과 인권의 관계를 잘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내용에는 혹여 억울한 법집행 문제로 고통 받는 백성을 살핌과 동시에 법의 왜곡을 부채질하는 특권층에 대한 경고를 담아 놓았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길 원했던 정조대왕_1
'흠휼전칙'에 실려 있는 곤장의 그림이다. 조선시대에 죄의 경중에 따라 그 크기를 선택하여 벌을 주는 도구였다. 그런데 사용규정을 보면 곤장은 아무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군영 소속의 고위무관이나 변방의 군사권을 겸임하는 관리에게만 사용권이 주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 고을의 수령이 백성들에게 곤장을 치는 것이 법적으로는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전국에서 곤장에 맞아 죽는 백성들이 늘어나는 등 법 집행의 심각한 문제가

예나 지금이나 법의 집행은 돈과 권력사이에서 끊임없는 유혹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소위 '힘 없고, 빽 없는' 백성들에게는 가혹하고 뭔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좀 더 유연하게 적용되는 듯 한 모습들을 가끔 볼 수 있다. 마치 법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 앞에 법이 불쌍해지는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준칙서의 중간에 정조는 "아! 법은 천하에 공평한 것이다(噫! 法者, 天下平也)"라고 말하며 비록 임금이라 할지라도 권력을 이용하여 그 죄의 경중을 가리는 데에는 관여할 수 없으며, 공평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래서 특별히 높은 직위를 이용하여 죄에 대한 처벌을 적게 받으려는 사람에 대하여 엄격한 법집행을 주문하기도 하였다. 또한 형벌을 집행하는 데 사용하는 각종 매질의 도구인 태(笞)·장(杖)·가(枷)·축(杻)을 모두 거둬다가 규격대로 제작되었는지까지 살피는 세심함을 보였다. 

당대를 살았던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올바른 법 집행이었다. 법은 공평하게 만들어졌을 지라도 법 집행과정에서 불공평이 발생하면 그 문제는 더 치명적이다. 법 집행이 올바르게 되지 않는다면 백성을 보호해야 하는 법이 오히려 그들을 억압하고 옥죄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당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역사기록이 바로 사법권의 본질인 재판의 기록이다. 

세월호의 참사에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지만, 또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 사건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떠한 의혹없이 투명하게 공과를 밝혀 재판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오직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기를 원했던 정조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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