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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덕 시장의 옥중서신
박두호/왓츠뉴스 대표
2014-05-09 10:52:49최종 업데이트 : 2014-05-09 10:52:4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김주현 실장 13년 간직한 친필 서신 공개

지난달 수원시 김주현 비서실장과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식사를 마치고 김 실장이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편지봉투 하나를 꺼냈다. 수신인 수원시청 상수도사업소 김주현 계장, 발신인 안양교도소 수인번호 3109 심재덕. 2001년 9월 13일 소인이 찍혀있었다.

심 시장은 그해 3월 12일 수뢰 혐의로 구속된 뒤 7월 30일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 중이었다. 심 시장은 이듬해 10월 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2003년 11월 27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심 시장은 편지에서 '철창 밖으로 유난히 맑고 푸른 하늘...'로 시작하며 수감 중인 자신의 상태를 상기시켰다. 이어서 김 계장과 다른 직원들에 대한 안부를 묻고 부인, 자녀 등 가족에게 잘하라고 당부했다.

심 시장은 특별히 공직자가 지켜야할 덕목을 3가지로 요약했다. ①깨끗할 것, ②열정을 가질 것, ③가정을 잘 다스릴 것 등이다. '깨끗할 것'은 풀어 말하면 공직자가 업무와 관련해 돈을 받지 말라는 것이다. 돈을 받았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감생활을 하면서 후배 공직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첫 번째 교훈이라니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심재덕 시장의 옥중서신 _1
심재덕 시장의 옥중서신 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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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덕 시장의 옥중서신 _2
심재덕 시장의 옥중서신 _2

편지는 일상적인 안부를 그냥 담담하게 전하며 밖에 있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보는 이를 더 아프게 한다. 받지 않은 돈을 받았다고 기소돼 감옥에 갇혀있는 그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장이 끊어지고 피가 거꾸로 돈다고도 한다. 
필부가 그러할 터인데 100만 시민의 자치단체를 아름답게 가꾸고자 했던 열정이 무고하게 꺾여 갇혀 있는 그는 오죽했을까.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법정에서 나와 문방구 커터 칼로 배를 그어 그 분함을 표현했다.

편지지와 봉투가 교도소에서 흔히 사용하는 규격이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2001년 3월 심 시장이 구속되고 며칠 뒤 당시 연합뉴스 기자였던 나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심 시장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2002월드컵 개최 도시 시장으로서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동행한 대기업 임원이었다. 당시 수원월드컵경기장을 그 기업이 짓고 있었다. 

그는 대뜸 "심 시장은 돈을 받을 분이 아니에요"라며 얘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프랑스 방문 때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프랑스월드컵 방문 일행은 당시 심 시장, 김용서 시의회의장, 대기업 임원 2명, 월드컵경기장 건설 관련 부서 과장 1명, 그리고 필자 등 모두 6명이었다.

그가 파리에 도착한 첫날 밤 달러를 담은 봉투를 들고 심 시장을 방으로 찾아갔다. '일행이 있으니 필요한 경비에 쓰십시오' 하고 봉투를 건넸다. 심 시장은 받았고 그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 프랑스 월드컵 관람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날 밤 심 시장이 호텔에서 그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심 시장은 그가 건넨 봉투를 포장 그대로 다시 건네주며 가져가라 했다. 
심 시장은 "자네가 나에게 돈을 줄 때 내가 거절했다면 자네가 다음 날부터 내 얼굴을 볼 수 있었겠나. 그러면 이번 여행이 얼마나 어색했겠나. 나는 당초부터 이 돈을 받을 생각이 없었네. 여행이 끝났으니 이제 가져가게. 여행이 즐거웠기를 바라네"라며 돌려줬다고 했다.

일화는 일화로 끝났다. 심 시장이 돈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정황증거로 재판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지만 진술도, 탄원서도 낼 수 없었다. 돈을 건넸던 행위 자체로도 뇌물공여죄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공소시효가 소멸됐다.

심 시장의 편지 말미는 '왼손이라 惡筆(악필)이네'라고 마치고 있다. 심 시장은 수전증으로 오른 손으로 글씨 쓰는 것을 불편해 했다. 편지와 봉투 주소를 모두 왼손으로 썼으니 얼마나 오래 걸려 힘들게 썼을지 짐작이 간다.

김 실장은 심 시장이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을 때 보낸 이 편지를 13년 동안 간직하고 있었다. 혼자 간직하고 있기에는 너무 벅차 이제 손을 놓아야겠다고 했다. 편지는 심 시장의 역사가 보관되고 있는 해우재에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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