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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말 좀 많이 합시다
윤수천/동화작가
2015-08-29 11:36:24최종 업데이트 : 2015-08-29 11:36:24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사람이 하루에 하는 말의 분량은 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많을 것이다. 강의나 상담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말을 입에 달고 살 것이나 외딴 곳에서 혼자 사는 사람은 하루에 몇 마디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어디 말의 분량만 차이가 나겠는가. 말의 내용도 천태만태일 게 틀림없다. 공무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의 말과 일상 속에서만 사는 사람의 말은 내용뿐 아니라 말이 지니는 무게까지도 다를 게 틀림없다.

여기에서 공무로 인해 하는 말은 일단 접어두고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그 첫 번째로, 가족 간에 하는 말은 어떨까. 이름만 대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Y시인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일상 속에서 나누던 하찮은 말이 그립다고 고백했다. "여보, 커피 한 잔 할래요?", "여보, 비가 와요." 같은, 별로 특별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그런 말이 그립다고 했다. 

사실 가족 간에 하는 말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말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건 어느 가정이고 간에 비슷할 것이다. 어젯밤 꿈자리가 어떠하다느니, 밖의 날씨가 어떻다느니 하는 말은 크게 중요하지도 않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인 것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참 시시한 말이다. 그런데 이 시시한 말이 가족의 정을 두텁게 하고 끈끈하게 해준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 또한 시시한 말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니, 시시하다 못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뿐이다. "나 얼마만큼 좋아해?" "하늘만큼. 당신은?" "바다만큼." 꼭 어린애들이나 하는 말이 시도 때도 없이 오고간다. 그런데 그 하찮고 시시한 말이 그 두 사람에게는 그 무슨 말보다도 듣고 싶은 말인 것이다.   

친구끼리는 또 어떤가? "친구야, 우리 밥 한 번 먹어야지." "여보게, 올 여름 피서라도 다녀왔나?" 그런 시시한 말이야말로 해도 되고, 안 해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이런 시시한 말이야말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삶의 행복은 그런 시시한 말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 간의 화목도 그렇고, 친구 간의 우애도 그렇고, 직장동료 간의 단합도 그렇다. 시시한 말을 하지 않는 관계는 거리가 먼 사이요, 이것이 심화되면 급기야 불화를 낳는다.
시시한 말을 많이 하며 살자. "여보, 오늘은 더 예뻐 보이네." "당신, 그 옷 참 잘 어울린다." 부부 사이에 할 수 있는 시시한 말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헌데 우리는 그렇게 많은 행복의 통신을 외면하며 살고 있다. "친구야, 이번 일요일엔 뭐해?" "오늘 날씨 참 좋지?" 친구끼리 나눌 수 있는 시시한 말도 엄청 많다. 헌데 우리는 그 좋은 행복의 알사탕을 봉지 속에서 꺼내지 않고 있다. "선배님, 요즘도 일요일마다 등산 가시지요?" "이 봐, 자네는 연극 좋아 한다지?" 선배와 후배끼리 나눌 수 있는 시시한 말도 모래알처럼 널려있다. 헌데 대개는 그런 따뜻한 교분을 외면한 채 냉랭하게 살고 있다. 

시시한 말 좀 많이 합시다_1
사진/김우영

평생 의사로 환자의 곁에서 일하다 퇴임한 M의사는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면서 아주 중요한 경험담을 토로했다. 한 번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중환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단다. 살아온 지난날 속에서 언제 가장 행복했느냐고 물었단다. 그랬더니 설문에 응한 환자의 90%가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하더란다. 그것도 가족 간에 있었던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을 말하더란다. 그 설문지 조사에서 M의사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고 한다. 가족에 대한 소중함과 함께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가는 하루의 시간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것.

하찮아 보이는 아주 작고 일상적인 것들이 곧 삶의 행복이 되듯이 시시한 말일수록 인간관계를 따습게 해주고 희망과 용기를 준다. 그러니 돈 안 드는 시시한 말을 많이 하며 살아야겠다. "여보, 오늘 하루 수고 많았지?" "아이고, 어제 한 말 오늘도 같은 말이시네요. 아예 녹음을 했다가 틀어요. 호호." 이 얼마나 보기 좋은 부부인가. "여, 반갑네. 자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활 걸었어." "그래? 술 생각이 나서 걸은 건 아니고?" 이 얼마나 정겨운 풍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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