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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기
윤수천/동화작가
2015-12-20 11:49:49최종 업데이트 : 2015-12-20 11:49:4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다시 시작하기_1
선상 일출

인간의 지혜 가운데서도 시간을 '나눌 줄' 안 지혜야말로 으뜸이지 싶다. 1년은 365일, 하루는 24시간, 한 시간은 60분, 1분은 60초...누가 처음 이런 식의 시간 나누기를 창안했는지 몰라도 그 명석한 지혜에 대해 인류는 대대로 감사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다. 만약 시간을 나누지 않고 그날그날 살아왔다고 한다면 인류 역사의 발전은 감히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이 그날인 인류에게 꿈이 있을 리 없었을 테고, 그날이 그날인 인류에게 계획이니 목표란 것도 있을 리 만무했을 테니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결산이란 어휘도 굳이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2015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때가 때인지라 이맘때면 왠지 더욱 쓸쓸하고 허전해진다. 이룬 것보다는 이루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연초에 계획했던 일, 딴 것은 몰라도 요것만은 기필코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것들, 그러나 올해도 허공 속의 빈 약속이 되고 말았으니 어깨가 쳐질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세모가 가까워오면 공연히 안절부절 못하게 되고 무엇엔가 쫓기는 듯 자꾸 뒤를 돌아다보게 된다. 전에는 꼼꼼하고 차분하던 사람도 세모의 문턱에선 그 자세가 흐트러지게 마련이니 이래서 회한이란 말이 나왔나보다. 

이틀 사이에 나는 삶의 극과 극을 맛보아야했다. 토요일엔 친구의 딸 결혼식에 다녀와야 했고 그 다음날은 친구의 상가에 문상을 다녀와야 했다. 그 기분은 참으로 착잡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12월이 주는 그 시간의 느낌 때문인지 착잡한 심정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산다는 것, 그것의 의미가 새삼 가슴을 치밀고 들어왔던 것이다. 그와 함께 같은 시간이라도 누구에게는 행幸이 되고 누구에는 불행不幸이 된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이런 일을 어디 한두 번 겪는 일인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일찍이 러시아의 대시인 푸시킨이 인생에 대한 성찰의 시를 남길 만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후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매년 신춘문예에 작품을 보내지만 그때마다 보기 좋게 낙선의 고배만 마시는 후배다. 그날따라 술을 한 잔 했는지 목소리가 너무도 처량했다. 왜 자신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 하나에만 만족하지 못하고 문학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게다가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무슨 구세주라도 맞이하기라도 하듯 신문사 신춘문예 공고를 기다리는지 모르겠다고. 올해도 떨어질 게 빤한데도 신문사 두어 군데에 작품을 보냈노라고. 

나는 후배에게 말해 주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등단이란 관문 통과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 너무 등단에 목매지 마라. 그리고 신춘문예만 고집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문학을 사랑하는 일, 당선이니 등단이니 하는 따위를 초월하여 그냥 쓰는 일이 행복한 일 아니겠느냐.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운명의 신이 손을 잡아 줄 것이다.
나의 조언이 어느 정도 후배의 마음에 닿았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후배도 익히 다 아는 이야기일 터이고, 어쩌면 무슨 답을 기대하고 전화를 한 것도 아닐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냥 속에 있는 말을 누군가에게 쏟아놓고 싶었던 참에 내가 생각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올해도 후배의 작품은 당선이 아닌 선외일 수 있다. 그러나 후배는 결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을 난 믿는다. 다시 시작할 것이다. 어디 그 후배뿐인가. 우리 모두는 당선자가 아닌 선외자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게 된다. 스타트 라인에 설 수 있는 선수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올해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선정한 아동문학상 수상작이 생각난다. 매 시합마다 경기장에 나가지만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한 웃음거리 경주마 똥말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똥말에겐 매 시합이 가슴 설레는 새로운 도전이다. 결코 우승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직 달리는 것만이 기쁨이요 희망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
지나간 것들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자. 후회하고 눈물 흘리는 그 시간에 눈 한 번 크게 뜨고 주먹 한 번 움켜 쥐어보자. 그리고 저무는 해를 바라보자. 저기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해는 다시 떠오를 힘을 비축하기 위해 잠시 우리들 눈에서 사라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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