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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선생 길들이기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4-11-02 10:02:43최종 업데이트 : 2014-11-02 10:02:43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단편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소설의 화자(話者)인 구샤미 선생이 키우는 고양이가 주인공이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라는 첫 문구로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엄연히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나는 어찌하다 전 주인과 헤어지게 되고 길거리를 방황한 지 며칠이 지난 밤, 때마침 나타난 낙산선생 아들의 꼬드김에 넘어가 버렸다. 

나는 눈동자가 초록색이고 회보라색 단모로 아주 기품 있는 수컷 고양이다. 낙산선생은 내가 얼마나 고귀한 집안 출신인지를 미처 알지 못했다. 책자를 보고나서야 '러시안 블루'라고 알아차렸다. 병원에 갔을 때 원장은 내가 두 살 정도 되었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광견병 등 각종 예방주사를 놓았다. 낙산선생은 비용이 20만원이나 되었다고 투덜댄다. 물론 보험이 안 되어서 그렇다. 낙산선생은 내 이름을 '바스'라고 지어 주었다. 고대 이집트의 고양이 신 바스테트(bastet)를 줄여서 바스라 부르기로 한 것이다. 

낙산선생 길들이기_1
나는 고양이다

천식을 가지고 있는 낙산선생은 내가 솜털이 빠져 기관지에 좋지 않을 텐데도 끔찍이 생각한다.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은 괜스레 긴 줄을 가지고 나를 시험해 보기도 한다. 나는 줄을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주인이 즐거워하는 모습 또한 재미나다. 사실은 혼자서 조그만 종이뭉치를 굴리고 다니기를 좋아한다.

한번은 열린 창문 방충망에 무언가 움직이는 물체가 보여 뛰어 올라 앞발로 채려하니, 아뿔싸, 낡은 방충망이 뚫려 5층 아래로 떨어졌다. 용케도 낙산선생은 뚫린 방충망 모양으로 내가 떨어진 것을 직감하고 근처 잔디밭을 헤맨다. 그리고 지하 환기창 옆에서 숨을 고르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 반색한다. 사실은 내가 먼저 바라보고 어찌하나 기다리고 있던 것도 모르고. 
나는 떨어진 적이 또 한 번 있다. 거실의 동그란 의자에 앉아 졸다가 사르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낙산선생이 바라보고 웃는다. 고양이 체면이 말이 아니다. 

몇 해 전 혈뇨가 있어 무척 힘들었다. 밥맛도 없고 움직이기도 싫었다. 놀란 낙산선생이 근처 병원에 데리고 갔다. 그런데 의사는 혈액검사, 초음파 검사 등을 하더니만 내 한쪽 콩팥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기서는 치료가 되지 않으니 서울의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기가 막힌 일이다. 내 콩팥 하나가 어디로 갔나? 낙산선생은 괜한 진료비 30만원만 들었다고 언짢아한다. 아픈 내가 미안해서 죽을 맛이다. 

어이없던 낙산선생은 인터넷을 뒤지더니 가까운 영통에서 고양이 전문병원을 찾았다. 다시 각종 검사를 하고 초음파 사진도 찍었다. 방광에 찌꺼기 같은 것들이 쌓여 있어 혈뇨가 나온다고 한다. 입원치료하면 된다며 살을 빼지 않으면(이때 나는 6kg이 넘었다) 재발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고양이 콩팥위치는 원래 서로 다르니 걱정 말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내 콩팥 하나가 없어질 리가 있나. 앞서 의사는 혹시 돌팔이 아닌가 모르겠다". 
영통병원에서 4일간 입원치료하고 퇴원하였다. 의사는 짧은 입원기간이나마 내가 살이 빠졌다고 좋아한다. 
"아이쿠 미안해서 어찌하누. 낙산선생, 치료비 30만원 또 지불하여야겠습니다."

낙산선생이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있으면 일부러 자판 위에 앉아 조는 체 하기도 하고 뭐라고 중얼대기라도 하면 아예 모니터 후방에서 작업이 끝날 때까지 들어 누워 눈 감고 있으면 그만이다. 낙산선생이 외출하고 돌아오는 기척이 나면 현관 안쪽에서 기다리다가, 얼굴이 보이면 곁의 빈 상자를 박박 긁어댄다. 물론 낙산선생은 내 행동이 반갑다는 표시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또한 나는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 거실 창밖을 바라보는 일이 잦다. 그렇다고 '창밖의 여자'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재미나서 쳐다볼 뿐이다. 가끔 TV도 시청한다. 너무 가깝게 보면 낙산선생은 눈 나빠진다고 호통 친다. 낙산선생은 자칭 폐쇄공포증이 있다고 칭얼대며 식당에 가서도 구석에 앉기를 싫어하는데 나는 좁은 종이박스 속에 들어가기를 좋아하고 책장 속에 들어앉기도 한다. 내가 책장 구석에서 쉬고 있으면 낙산선생은 이리저리 찾아다닌다. 그 모습이 우습다. 

나는 모래가 깔린 깨끗한 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모래를 긁어 덮는다. 하지만 화장실이 더러우면 마음 내키는 곳에 아무데나 흘린다. 이때 낙산선생은 내 진저리치는 모습을 보고 호통을 친다.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도 용변을 볼 때면 진저리를 친다. '에이, 진즉 화장실청소나 해놓지'. 

나는 식사시간을 조절하기도 한다. 낙산선생이 기침(起枕)하기 전 머리맡에서 야옹대면 눈 비비며 일어난 낙산선생은 영락없이 내 빈 밥그릇을 채운다. 
그리고 낙산선생보다 앞서 화장실에 들어간다. 그러면 으레 마실 물을 주기 마련이다. 만약 딴청을 하고 있다면 '야옹' 소리만 내면 득달같이 물을 준다. 저녁때는 야옹댈 필요도 없다. 그냥 밥그릇 앞에 앉아 낙산선생과 눈만 마주치면 그만이다. 내가 출출해서 하는 행동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나는 길고양이들을 챙기는 아량도 가지고 있다. 농촌생활을 할 때 길고양이에게 밥을 먹이려고 길고양이가 오는 방향으로 일부러 먹던 밥을 남겨두기도 하고 길고양이들과 어울려 다니기도 했다. 

낙산선생 길들이기_2
내가 먹이를 나눠준 길고양이들

심사가 뒤틀려 낙산선생 몰래 가출한 경험도 있다. 가출한 지 엿새째 되는 날 새벽 나는  아파트 5층 현관 앞에서 낙산선생이 나오기를 기다려, 6일 만에 돌아왔다. 하지만 내 친구 몰리는 뉴질랜드 바닷가 휴양지에서 가족과 헤어져 4개월 만에 150㎞나 떨어진 집을 찾아가 주인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그에 비하면 내 가출은 별것도 아니다. 

나는 집안에서는 물론 산책길에도 낙산선생을 졸졸 따라다닌다. 내가 농촌 집 앞마당에서 지낼 때 낙산선생이 버스를 탈 때면 정류장까지 쫒아가고 돌아 올 무렵이면 정거장 근처에서 기다렸다. 그런 나를 보고 낙산선생은 사고 난다고 눈을 부라린다. 
또한 낙산선생은 겨울밤이 춥다고 나를 보일러실에 들여놓고 문을 닫고는, 아침에 보일러 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을 보고 머리를 갸우뚱 하곤 했다. 레버형 손잡이는 내가 뛰어올라 앞발로 쉽게 열수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다.  

나는 '노튼'처럼 '파리에 간 고양이'는 아니지만 수원, 서천, 화성을 두루 다녔다. 
낙산선생은 내 친구 말티즈 '짱구'를 길들이겠지만 나는 낙산선생을 길들이고 있다. 
나는 감히 낙산선생에게 말한다. '나는 세상 모두가 나를 사랑해 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낙산선생이 나를 사랑해 주길 바랄 뿐이다' 아참, 이참에 낙산선생이 누구인지 설명하여야겠다. 이 사람은 술을 좋아하고 자유스러운, 자칭 낙산(駱山)이라 부르면서 나를 빙자해서 이 글을 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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